IMF 이후 잃어버린 것들
2007년 05월 13일(일) 19:14 가가
최근 청년실업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나 공기업 입사시험에 몰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소식도 아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은 사기업에 비해 해고의 불안이 적어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근무환경이 열악한데다 언제 경영이 어려워질지 몰라 불안하고, 대기업도 높은 근무강도에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등의 유행어에서 볼 수 있듯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여가시간을 비교적 많이 가질 수 있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으며 정년이 보장되는 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분위기가 예전에도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외환위기 이후 더 두드러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올해로 흔히 IMF 위기라고 하는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째 됐다. 사회는 변화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각도 바뀌게 마련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참 많이 변했다. 최근 10년 동안의 변화는 60년대 이후의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탈농업화와 도시화 등과는 또 다른 것이다.
변화의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많은 변화 가운데 위험에 대한 인식이 커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위험은 미래의 불확실성 또는 불안정성에서 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부침은 있었지만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기업이 도산할 위험이 적었고, 따라서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상황을 급반전시켰다.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했다. 도산하지 않는 기업도 구조조정을 위해 인력감축에 나선 경우도 많았다. 특히 가장 안정적인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은행에서도 많은 근로자가 눈물을 머금고 평생직장이라고 믿고 근무하던 곳을 떠나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 TV에서 봤던 전직 은행원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는 언젠가 휴일에 북한 전투기의 귀순으로 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가족을 돌보지 않고 직장으로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가 자신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헌신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개인에게는 실직이고 가정에는 경제적 기반의 붕괴를 의미한다. 실직 사태는 회사를 떠났건 떠나지 않았건 삶의 주체이자 한 가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근로자들에게 내 회사가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 결과 기업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헌신도는 크게 낮아졌다. 회사를 위해서는 나를 희생할 수도 있다거나 회사가 발전하고 성장하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나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과 구성원 사이의 암묵적 믿음이 깨어진 것이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가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대기업도 도산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고, 기업의 구성원들은 예전처럼 조직의 성장을 위해 몸을 바쳐 일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런 세태의 변화가 취업시장에 반영되어 공무원 또는 공기업 선호 열기를 낳은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선호를 바꾸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공직사회나 공기업도 많이 달라졌지만, 사기업에 비해 전반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입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비효율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효율에 매력을 느끼고 그로부터 보호 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문제다. 개인의 선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선(善)과는 합치되는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 전체의 도전의식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뭔가를 달성하려는 적극적 자세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과 개인의 도전의식을 북돋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박현수〈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중소기업은 근무환경이 열악한데다 언제 경영이 어려워질지 몰라 불안하고, 대기업도 높은 근무강도에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등의 유행어에서 볼 수 있듯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여가시간을 비교적 많이 가질 수 있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으며 정년이 보장되는 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분위기가 예전에도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외환위기 이후 더 두드러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올해로 흔히 IMF 위기라고 하는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째 됐다. 사회는 변화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각도 바뀌게 마련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참 많이 변했다. 최근 10년 동안의 변화는 60년대 이후의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탈농업화와 도시화 등과는 또 다른 것이다.
변화의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많은 변화 가운데 위험에 대한 인식이 커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위험은 미래의 불확실성 또는 불안정성에서 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부침은 있었지만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기업이 도산할 위험이 적었고, 따라서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상황을 급반전시켰다.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했다. 도산하지 않는 기업도 구조조정을 위해 인력감축에 나선 경우도 많았다. 특히 가장 안정적인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은행에서도 많은 근로자가 눈물을 머금고 평생직장이라고 믿고 근무하던 곳을 떠나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 TV에서 봤던 전직 은행원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는 언젠가 휴일에 북한 전투기의 귀순으로 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가족을 돌보지 않고 직장으로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가 자신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헌신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개인에게는 실직이고 가정에는 경제적 기반의 붕괴를 의미한다. 실직 사태는 회사를 떠났건 떠나지 않았건 삶의 주체이자 한 가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근로자들에게 내 회사가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 결과 기업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헌신도는 크게 낮아졌다. 회사를 위해서는 나를 희생할 수도 있다거나 회사가 발전하고 성장하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나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과 구성원 사이의 암묵적 믿음이 깨어진 것이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가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대기업도 도산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고, 기업의 구성원들은 예전처럼 조직의 성장을 위해 몸을 바쳐 일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런 세태의 변화가 취업시장에 반영되어 공무원 또는 공기업 선호 열기를 낳은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여 선호를 바꾸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공직사회나 공기업도 많이 달라졌지만, 사기업에 비해 전반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입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비효율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효율에 매력을 느끼고 그로부터 보호 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문제다. 개인의 선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선(善)과는 합치되는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 전체의 도전의식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뭔가를 달성하려는 적극적 자세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과 개인의 도전의식을 북돋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박현수〈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