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정치권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대선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열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을 못마땅해 하던데, 나는 당연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이란 자리가 나라를 위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를 위해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선택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과거 군부독재 시대의 부끄러운 핑계조차 댈 수 없다.

한국의 여성계를 대표하는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다 보니, 올해 대선에서 여성계가 나서서 여성후보를 지지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제안이나 질문을 받곤 한다. 우선 여러 진영에서 다수의 여성후보들이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여성들이 무조건 여성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남성 우위의 풍토에서 제도적 뒷받침과 인위적인 노력 없이는 양성평등의 정치판을 짜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여성계는 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못지않은 자질과 역량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정치에 진출하기 어려운 현실은 남성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공동체에 이롭지 못하다.

정치에 여성의 진출이 많아지면 국민들이 식상해 하는 우리의 정치판을 신선하게 바꾸고 나라를 활기차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경우에는 제도 때문에 여성에게 불리한 것은 없다. 다만 여성도 남성에 못지않게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후보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대통령의 직무를 감당해 낼 역량을 갖추고 국민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돌이켜 보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급속히 확산되고 뿌리를 깊숙이 내려왔다. 마치 인류 역사상 최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뤄낸 것처럼 민주화도 최단기간에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기나 하듯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권력의 민주화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자신들의 뜻과 상관없이 카리스마적 리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러 우리는 국민들과 수평적으로 토론하기를 원하는 대통령을 갖게 되었다. 지구상에 이렇게 민주적인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는가?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일부 왜곡된 평가에 대해선 항변할 말이 참으로 많지만 참여정부의 각료를 지냈기에 역사에 맡기고자 한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은 어떤 분이라야 할까?
1960년대와 70년대의 산업화, 1980년대와 90년대의 민주화, 2000년초의 정보화를 바탕으로 이제는 세계화다. 세계화는 인류문명사의 큰 흐름이다. 이 흐름은 지방화와 함께 한다.
인류역사의 흐름 가운데 오늘의 세계를 살필 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선진 한국을 일궈낼 선장의 자질과 역량이 있는 분이라면 좋겠다. 이런 흐름을 능동적으로 타고 가면서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상황이 더 이상 우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나라를 이끌어 갈 세계화 대통령이 곧 차기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러 경로를 따라 대통령 후보가 정해질 것이다. 그 경로를 쫓아가면서 선택된 후보가 어떤 배경을 가졌고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그 역량이 어떨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 후보를 내세운 집단의 성격도 따져보아야 한다. 더 이상 과거의 틀에 매인 보수와 진보의 잣대는 의미가 없다.

작금의 상황들은 이미 그 틀이 급격히 깨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세계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졌는가? 누구라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서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이끌어 내겠는가? 여기에 도덕성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흥망성쇠는 물론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들을 해야 하고 장관을 비롯한 수많은 요직을 임명한다. 그런 대통령을 비도덕적인 사람이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올 겨울 좋은 대통령, 잘 뽑게 되기를 소망한다.


김화중<전 보건복지부 장관·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