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가 계시고 고등학교까지 다닌 고향 광주에서 9년 가량 변호사를 하다가 서울로 입성한 지 만 1년이 되었다. 나이 50이 되어 사업기반이 잡힌 고향을 떠나 황량한 서울로 사무실을 이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내가 느지막이 서울로 옮긴 이유는 할 일과 기회가 많은 큰 무대에서 다양하고 의미 있는 사건들을 처리해 보고 싶었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육과 연수의 기회, 문화환경이 너무도 열약한 광주에서 향유해 보지 못한 문화생활에 대한 향수, 아이들 교육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그러나 시골 변호사가 서울에서 생활하기는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집값을 포함한 생활비는 살인적이다. 최근 영국의 유력한 경제 주간지에 따르면 세계 주요도시 생활비 순위가 서울은 11위로 뉴욕, LA보다 비싸다. 미국 컨설팅 회사 발표에 의하면 39개 항목을 기준으로 한 삶의 질은 89위다.
경험해보니 사실이었다. 목동에서 서초동까지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얼마 전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광주의 48평 아파트를 매도하였으나 대치동 38평 아파트 전세 보증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이들 학원비는 광주보다 2∼3배 비싸다. 나는 20년 동안 아파트 근처 동네 미장원에서 커트를 했는데 광주에서는 6천원, 목동에서는 1만원, 대치동에서는 1만4천300원(부가세 포함)이었다. 머리 한번 자르는데 부가세가 붙고 1만4천300원이라니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서울의 아파트 값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수 억원의 이익을 얻어 표정을 관리하며 떨어질까 전전긍긍이고, 아파트가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이 힘들어 근로의욕을 상실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10개 모임을 가면 7∼8곳에서는 집값과 아이들 교육 문제가 화제에 오른다.

교통체증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장난이 아니다. 광주에서 9년 동안 사무실까지 걸어서 15분, 차로 5분 거리에 살아서인지 쉽게 적응이 안 되어 너무 짜증이 나고, 출퇴근에 2시간 이상을 소비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 집값, 교통비, 생활비 면에서는 광주가 정말 좋은 도시다.

서울에 전국 변호사의 70%인 6천여명이 있고, 소속 변호사가 수십 명 이상인 대형 로펌도 많다. 기업관련 사건이나 질 좋은 사건은 몇 개의 대형 로펌이 독과점하고 있다. 일부는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나 중형 로펌이, 나머지 소수의 사건을 개인변호사나 소형 로펌이 나누어 갖는다. 평범한 개인변호사나 소형 로펌은 이렇게 꽉 짜인 구조나 인적 네트워크를 뚫고 마케팅을 하여 고객을 확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시가 어렵고 익명성이 있어서인지 사건 브로커도 많다. 광주에서는 지역이 좁고 변호사 수가 적어서인지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성실성을 인정받고 지명도도 얻게 되어 어느 정도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휴일 자주 무등산에 올랐던 추억이 정말 그리워진다. 집에서 가깝고 높이도 적당하고 코스도 다양하며 바위산이 아니어서 오르기 쉽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등을 오르다보면 무등산이 정말 좋은 산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산에 가기까지 교통도 복잡하고 바위가 많아 오르기도 힘들고 사람도 너무 많아 별로 즐거움을 못 느낀다.

그래도 서울에 올라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발레, 뮤지컬, 연극, 음악회 등 각종 공연 10여회, 스포츠 경기 등 광주에서 못 누렸던 문화적 향수를 맘껏 달래고 있다. 또한 민변 사법위원장, 법무부 감찰위원, 정책위원으로서 보람 있는 일도 하고 있다. 어른들의 생활이야 불편하지만 중·고생인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서울의 문화를 접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소득이다.

광주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이 좁고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연줄로 얽혀 있어 정실에 치우치고 합리적 사고가 부족하며 타인에 대한 험담, 시기, 질투 등이 많고 시야가 좁은 것 등 부정적 요소도 있다. 그래도 삶의 질이 서울보다 훨씬 좋은 광주를 자주 찾아야겠다. 광주는 언젠가는 회귀해야 할 내 고향이다.
민경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