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광주를 의향, 예향, 미향(味鄕) 등 3향이라고 한다. 의향, 미향에는 동감하지만 예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광주 문화수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시작되어 정치논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광주가 문화수도의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는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문화의 사전적 정의는 ‘기술, 학문, 예술, 도덕, 종교 등 물질적인 문명에 대하여 특히 인간의 내적 정신활동의 소산’이라고 되어 있다. 문화수도가 되려면 시민들이 음악, 미술, 체육, 문학 등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며 쉽게 생산하고 접근할 수 있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나 콘텐츠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본 광주는 이런 요소가 매우 결여되어 있으며 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나선 부산, 대구, 경주에 비해서도 나은 게 없다. 시내 중심에 커다란 아시아문화 전당 하나 짓는다고 문화도시가 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문화전당의 설계, 위원장 선임, 위원장과 기획단 사이의 논쟁 등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지난 2004년 5월 광주시민 60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문화수도에 무관심하다고 답변한 사람이 72%였고, 광주의 문화수도 역량에 대해서는 62.6%가 부정적이거나 확신을 갖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는 대형 공연장이나 특급 호텔 하나 제대로 없다. 2002년 월드컵 때 일부 팀이 광주에 특급호텔이 없어 광주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인근 도시에서 머물다 오고, 히딩크 사단도 8강전에 승리하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가 버렸으며 일부 팀은 침대 매트리스를 공수해 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04년 여름 세계적인 뮤지컬 ‘카바레’가 대전, 대구, 부산에서는 공연되는데 광주만 빠졌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나는 기획사에 문의하였더니 광주에는 제대로 된 대형 공연장도 없고 200여 명의 단원들이 함께 묵을 고급호텔이 없어 공연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몇 년 전 아시아개발은행 총회 유치도 특급호텔이 없어 무산되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씩 전국을 순회하면서 개최되는 전국변호사대회도 수백 명이 묵을 호텔이 없어 20여 년간 광주에서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책 판매량이나 뮤지컬, 영화 인구를 보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광주의 책 판매량이나 독서 인구가 저조한 것은 출판업계에 공지의 사실이다. 공연기획 관계자는 뮤지컬 인구는 대구, 부산의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그곳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광주에서 공연하려면 두 지역의 50% 수준으로 기획한다고 한다.
과연 광주 시민들 중 공연장, 전시장에 1년에 한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경제력의 핑계만 댈 것은 아니다. 부산 국제영화제는 수준 높은 작품이 출품되고 대성황을 이루는데 광주 국제영화제는 호응도가 너무 낮다고 지역신문에서 질타했다.
광주에는 겨울 스포츠인 프로농구, 프로배구 연고 팀 하나 없다. 대부분의 대도시는 겨울 스포츠인 농구나 배구팀을 연고로 갖고 있어 시민들이 겨울철 프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광주, 전남에는 농구나 배구팀 연고가 없어 스포츠 애호가들은 겨울에 농구나 배구 경기를 TV로 시청해야 하며 직접 보려면 전주나 대전까지 가야 한다. 몇 년 전 실업팀 배구감독에게 왜 광주에서는 경기가 잘 열리지 않느냐고 하니까 당시는 배구가 프로화되기 전으로 연고지가 없을 때인데 체육관이 난방이 잘 안 되고 대관료가 너무 비싸 배구협회에서 꺼린다고 하였다.
형식이나 외관에만 신경 쓰지 말고 문화란 것이 무엇이고 문화를 누가 생산하고 누가 향유하는가를 고민해 보자. 문화생활이란 거창한 구호보다는 생활 속에서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산업은 21세기 지식산업의 총아이자 블루오션이다.
이왕 문화중심도시로 지정된 이상 이를 기회로 삼아 인프라를 갖추고 경쟁력을 갖도록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자. 관계 당국도 외관이나 실적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문화도시에 상응하는 콘텐츠를 마련하고 지혜를 모아보자.
민경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