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마음에는 크든 작든 설렘이 있게 마련이다. 대체로 밝은 전망과 기대 속에 좋은 각오와 결심들을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장래를 두고 염려들이 많다. 올해 대선을 치러야 하므로 더욱 말들이 많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시끄러움 자체를 비난하면서 그 책임을 대통령이나 정치권에 돌린다. 새해를 맞으면서 문득 이 염려와 소란들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북한의 핵문제로 떠들썩했지만 주식시장도 외국인투자도 멀쩡하다. 한편에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없다고 개탄하거나 분노할 만큼 평온하다. 이라크를 비롯하여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가 한둘인가? 웬 내전들이 그리 많은가? 그런데 우리나라만큼 밤길을 안심하고 나다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고들 한다.
근래에 아파트 값 폭등과 양극화 문제로 시끄럽다. 그런데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남들도 같이 아프니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하는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시원하게 해결을 못 하고 있으니 안타깝지만, 일관된 의지를 가지고 애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 같으면 문제가 안 되었거나 시시하게 취급되었을 사건들이 지금은 큰 문제로 논란될 만큼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고, 계속 그 길로 가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왜 그리들 시끄러운가?
일단은 말들이 많으니 시끄럽지 않은가? 이전 같으면 묻혀있을 문제들이 모두 표출되고 여기에 누구나 말을 마구 하다 보니 과거보다 혼란과 갈등이 훨씬 많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면 말들이 없어야 좋겠고, 없게 해야 하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새해 초부터 섬뜩해진다.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에서 국민들이 할 말도 못하면서 숨죽이고 살고 있는가? 비록 숨까지 죽이지는 않아도 정치와 권력에 관한 말에는 눈치를 보아야 하는 나라가 아직도 매우 많다. 불과 10여 년, 20여 년, 3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말의 자유가 없어 질식할 것 같지 않았던가?
말의 자유가 축복임을 알아야 하고 그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복을 복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자만하여 감사할 줄 모르거나 자기도취에 빠져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되면 신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는다는 것을 고대신화에서부터 인간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그래서 새해에 힘쓸 일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민주시민의 자격을 갖추는 일이다. 민주사회에 걸맞은 의식과 언행에 익숙해지도록 자기훈련에 힘써야 하겠다. 큰 책임만 논하기에 앞서서 내 책임부터 다하려는 노력,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용인하고 상대의 의견을 잘 듣고 그 논리를 좇아 내 의견을 설득해서 동의를 얻거나 타협에 이르는 민주적 절차의 존중. 일단 합의한 것은 신의를 가지고 이행하는 민주적 언행. 현재의 혼란과 갈등이 이런 민주적 절차와 언행에 접목된다면 그대로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폭발적인 동력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이런 다짐과 희망을 안고 새해를 출발하면서, 이런 일에 여성들이 앞장서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남성들은 너무 오랫동안 비민주적인 가부장적 사고와 투쟁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스스로 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참으로 말의 자유란 공기와 같다. 없을 땐 질식할 것 같더니 있으면 그 고마움을 잊고 산다. 자유가 축복임을 알고 이를 소중히 가꾸어 올해는 민주주의가 생활화된 한국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여전히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유쾌한 마음으로 그려본다.



김화중<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전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