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거품 위기가 시작되었던 1987년 이후 일본의 경제상황에 대해 다카하시조센(高橋乘宣)은 ‘사라진 일본경제의 기적’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설비투자 의욕은 아직 약했다. 엔고 아래에서 생산 투자는 해외에 거점을 두는 것이 주류가 되었으므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국내에서의 설비투자에 눈을 돌리려는 기업은 별로 없었다. 그러자 은행은 예금 운용처가 없어져 어려움을 겪게 됐고, 주식이나 토지로 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이다.” “거품 팽창은 기업이나 개인들의 차입금도 늘렸다. 저금리정책이 지속되고 있었으므로 돈을 빌려주기도 빌리기도 쉬운 상황이 발생해 있었다. 주식이나 토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고 융자받은 돈을 다시 토지 투기, 주식 투기에 돌리는 어리석은 자산의 명목가치 확장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개인에게도 만연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 한국경제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실질적인 생산의 증가 없이 자산가격이 나선형으로 오르는 현상을 거품이라고 할 때, 최근 들어 한국경제에서 거품현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곳은 부동산시장이다. 전국의 토지가격이 올해만 18.6% 상승했고 아파트 가격 상승액은 수백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 공급물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기존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결과이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집없는 서민의 내집 마련이라고 하는 사용가치에 집착하면서 1980년대 후반 일본 정부처럼 안일하게 낮은 이자율 정책을 고수하여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사이에, 주택시장은 이미 자산을 가진 ‘서민’이 담보자산에 관심이 있는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여 자산가치를 상승시키는 거품의 과정에 돌입했다.
작금의 한국경제 상황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0년대 후반 한국경제와도 흡사하다. 당시의 경제위기의 저변에는 부채비율을 300% 이상 안고서도 다른 기업들이 이익을 내는 ‘레드 오션’에 사업다각화란 명분으로 저돌적으로 뛰어든 기업들과 단기외채를 들여와서라도 기업에 사업 확장의 욕구를 채워준 은행들의 돈놀이가 함께 있었다. 작금에는 금융비용 부담률을 미국보다 높게 지면서도 확실하게 돈을 벌어줄 것이라고 믿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늠름한 가장들이 당시의 기업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의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났지만 현재는 외환보유고가 많아 걱정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지난 11일 발표한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한국의 단기외채가 최근에 급속도로 증가하여, 절대액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많아졌고,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중도 2004년에 28%에서 2006년 3사분기에는 47.5%로 증가했다.
김영삼 정권의 말기에는 한국경제에 대한 약간의 신뢰 저하가 단기외채의 대출차환(rollover)의 중단과 상환압력으로 이어졌다. 기업에 원화로 장기대출을 해준 은행은 대출채권만 가지고 있을 뿐 적절히 상환할 능력을 찾지 못했고 정부도 역부족이었다. 만약 노무현 정권의 말기에 부동산가격의 하락과 같은 거품붕괴의 조짐이 보이면, 가계에 원화로 장기대출해준 은행은 다시 대출채권만을 손에 들고 정부만 쳐다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본의 거품과 한국경제에 대한 환상은 오래가지 않아 붕괴되었다. 그것들이 붕괴된 직후에 받는 고통은 자산가치의 상승에 참여하지 못했던 서민들이 부담하였다. 고통의 긴 그늘을 거치면서, 장밋빛 환상을 걷어내고 투명성과 원칙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체제를 세우는 데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거품과 환상을 걷어내는 투명하고 세심한 경제정책을 미리 쓸 수는 없을까. 환상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는 정치계절을 맞아, 덮는 대신 드러내놓고 중요한 몇 가지만을 확실히 챙기는 현 정권의 지혜를 기대해본다.

손용엽<전남대학교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