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구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4천600만 명에서 5천100만 명 수준일 때에 경제규모, 복지수준, 생활환경에 가장 적절하다고 한다. 2005년 우리나라 인구가 4천814만 명이니까 적정수준인 셈이며, 이 인구를 유지하려면 매년 87만 명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04년에 48만 명, 2005년에는 44만 명만이 태어나 적정선의 절반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부부가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낳아야 현재 인구가 유지되리라는 것은 매우 평범한 상식이다.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감안해서 2.1명을 나야한데도 우리나라 2005년 합계출산율은 1.08이었다. 이는 국가공동체의 쇠락과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로 예고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저출산이다.
한국은 산아제한을 통한 인구조절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이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인구증가의 억제에만 몰두하다가 인구감소라는 새로운 위기가 닥쳐오는 데에 미리미리 대처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1983년 합계출산율이 2.1이었을 때부터 대비했어야 할 일이다. 시작에는 늦은 법이 없다고 했으니, 늦었지만 참여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국정의 주요과제로 채택해서 대책수립에 착수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이처럼 정부가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크다. 그것은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민들이 나서 주어야 해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인구통계를 빌리지 않더라도 인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감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변모해 온 모습을 통해서 모두 알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나라의 위기를 넘어 재앙이라는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재앙이 나와 후손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답은 한가지이다.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흔히 아이를 키우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라 거나, 여성의 직장생활과 자기실현에 장애가 크기 때문에 출산을 기피한다고들 말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타개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녀를 양육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직장을 갖지 않은 여성조차 출산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는 가부장적 가정문화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여성들에게 억압이고 부담이 되어 여성의 출산기피와 독신주의를 조장하게 된다. 근래에는 가부장적 가정문화가 남성들에게도 속박으로 작용한다. 가족의 부양책임을 지기 싫어서 독신을 택하거나 자녀를 원치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남녀가 좋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 안에 억압이나 부담이 존재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양성평등의 밝은 가정을 만드는 데에 합심해야 할 일이다.
이런 측면들은 단순히 정부가 마련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사회적 시설 및 제도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고 민간의 더 큰 역할이 요구되는 문화적 · 정신적 측면의 사회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지난 11월 15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전국 시·도 및 시·군·구 여성단체협의회 지도자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출산위기 극복은 여성의 힘으로’ 라는 주제의 전국여성대회를 가진 바 있다. 정부와 민간 모두가 나서서 지혜를 짜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자녀가 많은 것을 다복하다고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다가 많은 자녀가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이제는 자녀가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여로 변했는데 아직도 가정에는 부담이다. 근래에 여유 있는 가정의 주부들 가운데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손자·손녀를 보게 되면 싹 가신다고 한다. 자녀가 가정의 진정한 축복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국가도, 사회도, 기업도, 학교도, 모두 함께 나설 때이다.
김화중〈전 보건복지부 장관·한국여성단체 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