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반역이나 큰 죄를 저지르면 3족을 멸하였고 조상들의 잘못으로 인해 후손들의 인생이 제약된 경우가 허다하였다.
한 때 갑오개혁 후 홍범 14조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도 하였으나 군사독재 시절까지도 선조의 부역행위로 인하여 공직 진출의 제한이나 사회생활에 커다란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 연좌제를 폐지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은 비로소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아니하게 되었다. 자신의 의사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부모 등 가까운 친족의 행위로 자손의 인생에 심대한 장해를 초래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이며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한편 훌륭한 조상들의 업적이나 선행의 후광으로 자손들이 능력 이상의 평가나 대우를 받은 경우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능력이나 인성이 좋은 자손이 자신의 능력에 선조의 후광이 덧붙여진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능력이나 인품은 형편없는 사람들이 조상의 후광이나 권위에 의존하여 과대 포장되거나 득세하는 것이다. 더더욱 잘못된 것은 부모나, 형제, 남편 등이 커다란 잘못을 저질러 주위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이나 인품은 별 볼일 없는 그들의 자식, 아내, 형제들이 도덕적으로 함께 반성하기는커녕 연줄이나 돈, 권력을 이용하거나 편승하여 그 권력이나 지위를 세습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내 고향 화순에서는 이전 군수의 불법선거로 인하여 군수들이 구속되고 치른 재·보선에서 아내와 동생이 연이어 당선되었고, 얼마 전 K군에서는 아내가, S군에선 아들이 군수 재선거에서 낙선하였다.
이들이 평소 군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고 군의 수장이 되려고 준비하거나 노력해 온 사람도 아니고 군정을 이끌어 가기에는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또한 이들은 남편, 형,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는 한심한 출마의 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화순군의 뜻있는 군민들이나 시민단체가 군수는 부부, 형제의 전유물이 아니라면서 강력히 반대운동을 펼쳐 유력한 정당의 공천은 막았지만 결국 동생이 당선되었다. 이들을 당선시킨 유권자들의 수준도 문제는 있다. 또한 유달리 전남에서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도민의 성향과 관련이 있을까.
재·보선에서 당선되거나 출마한 아내, 동생의 능력과 인품이 뛰어나고 평소 해당 군민들과 호흡을 함께하고 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졌다면 그들이라고 피선거권이 제한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나 위의 경우 모두 남편이나 형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구속되어 당선이 무효되고 군정이 마비되었으며 치르지 않아도 될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되어 군민들은 엄청난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였다.
능력 있고 준비가 된 이들이 다른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선된다면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남편, 형이 불법을 저질러 다시 치르게 된 바로 그 선거에 출마한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법행위를 자행한 군수였던 남편, 형이 재·보선에 소요된 선거비용을 배상해야 하는지 법적으로 검토해 볼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 정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도 과연 대선 후보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간다. 그의 부친이 얼마나 많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였고 의문사를 당하게 한 독재자가 아니었는가.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자식으로서 마땅히 용서를 빌어야지 어떻게 우리 국가를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가 그 동네의 동장이나 반장을 한다고 할 때 아무 죄는 없다지만 그 지역 동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이며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 정서상 도덕적 연좌제는 살아 있다.
민경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