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버려지고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놀랍고 가슴 아픈 일은 이들 중 많은 수가 곧 엄마 아빠가 자기를 데리러 오고 자녀들이 자기를 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기대가 헛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시설운영자들은 그 기대의 대부분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가정의 붕괴에서 빚어지는 사회현상이다. 그런데 붕괴되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이는 오늘날 국가적 과제로 떠올라 시대의 화두가 된 저출산·고령사회대책에도 깊이 연계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더 이상 사적인 가정문제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바탕으로 지난 2004년 2월 9일 국회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이 통과되었고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이 법의 초점은 가정문제의 예방이다. 이 법에 의거하여 현재까지 50여개 소의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설치되어 가정문제의 예방·상담·치료, 건강가정의 유지·증진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운영 등의 활동을 통해서 지역주민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21일 국회 여성가족상임위원회가 제정·시행된 지 1년 반을 갓 넘긴 건강가정기본법을 폐기하는 가족정책기본법안을 통과시켜서 현재 법사위에 부의되어 있다.
이 법안이 건강가정기본법을 포괄하는 더 넓은 기본법이라고 한다는데,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가정’을 말살하고 있다. 우선 법의 명칭부터 ‘가정’기본법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면서, 법의 목적에서 건강한 ‘가정’을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족공동체’로 바꾸었다(제1조). 이어서 기본이념으로 ‘가정’이 아닌 ‘가족관계’를 중요시하고 있고(제2조), 가족의 정의에서는 ‘사실혼’(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까지 합법화하고 있다(제3조). 이 법으로 별거가 쉬워지고 시가·처가와 같은 혼인을 매개로 형성된 관계도 단절되는 등 개인화와 개별화를 심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가정’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또 가정의례 및 가정의 날도 폐지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가족정책기본법안대로라면 ‘가정’은 없고 ‘가족’만 남는다? 어떻게 이 법안이 ‘건강가정기본법’을 포괄한다고 사탕발림 할 수 있는가?
혹시라도 가정을 양성평등의 장애물로 보고 이런 발상을 했다면 잘못이다. 양성평등의 가정을 이루어 그 안에서 더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른 길이다.
또 부득이한 가정의 붕괴에 대해서 이로 인한 아내와 자녀들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그들이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사회적 노력을 크게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본말을 전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정’을 국회의원 몇사람이 이렇게 무모하게 깨부술 수는 없다.
특히 ‘사실혼’을 법적으로 공공연히 인정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일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전국의 가정학 전공 학자들의 성명을 보면, 현행법인 ‘건강가정기본법’이 현재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문제의 치료·예방·지지·보장·건강성증진·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사업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에 반하여, ‘가족정책기본법’안은 이러한 조항들을 삭제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 가정이 해체되고 난 후에 지원하는 복지적 접근에 머물게 된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이는 분명 후퇴이다. 이제 막 시행되어 실제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건강가정기본법’을 2년도 못되어 폐기한다면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처사가 될 것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이 ‘가정의 붕괴’를 막고 나아가 ‘행복한 가정’을 통해서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널리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신중히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김화중〈前 보건복지부 장관·한국여성단체 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