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공교육의 위기’ 혹은 ‘인문학의 위기’ 등의 표현을 흔히 보게 된다. 왜 이런 말들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게 되었는가?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을 터이니 여기에도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문화와 제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밖으로부터 들어온 이질적인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 근대의 역사가 동양 사회의 제도와 삶에 비합리적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 주었기에 지금 우리가 서양의 것이라고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비합리적 행위이며 또 그런 식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 나타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현재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연법에서 인간의 기본권 중의 하나이며 제일 순위라고 거론되는 개념이 생명권이다. 인간의 생명 즉 ‘생존’은 법에서도 철학에서도 절대적 명제라고 간주된다. 인간의 생존에 관한 문제를 능가하는 더 이상의 가치는 없으며, 인간이 공동체를 함께 구성했던 이유들 중에 생존이 절대적 순위를 차지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했었고 지금은 어떤 방법이 제기되고 있는가? 사회계약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존이 공동체를 구성하게 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면 생존을 위한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전적으로 개인들만의 책임으로 떠 넘겨지는 것이 마땅한가? 물론 생존의 일차적 책임은 개인 각자에게 있으니까 개인들이 먼저 생존을 위한 방법을 찾고 습득해야할 의무와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왜 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사회 속에서 교육이 존재해야 할 이유나 의미를 묻고 있다. 원시 시대의 성인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동물의 세계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 시대에는 거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 사냥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러므로 그 시대에 아이들이 사냥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미래의 생존 수단을 습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보아야 한다.
생존수단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대의 문명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사실 교육이 다양화해지고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농경과 상업 외에도 문자의 습득이나 전쟁 기술의 습득 그리고 다양한 예술적 기능 등이 새로운 생존 수단들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기술 혹은 지식은 동서양이나 시대에 따라 그것들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되었고 그 평가의 차이가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었으며 그리고 서로 다른 사회 구조나 전통을 낳게 했다.
어느 틈에 인간의 역사는 ‘화폐’라는 구체적인 생존 수단을 만들게 되었고 시장 경제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운용하는 사회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제 사회는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는 각종의 지식이 부의 기반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토플러가 맹목적인 부의 추구를 이야기했을 리는 없다. 인간이 없는 지식이 파렴치한 부를 낳는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토플러도 효율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강조하는 현대의 신자유주의를 어찌할 수 없었던지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기하고 있지는 않다.
더 많은 지식의 습득이 더 유용한 생존수단을 확보하게 해 준다면, 물론 교육의 일차적 의미로 제한된 것이지만, 교육은 사회 속의 개인들이 생존수단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기능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교육의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사회적 정의도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이 정의를 살려내고 있는가? 교육이란 공적 기구를 통해 부와 지위를 일종의 세습화하도록 만드는 일에 우리가 기여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인간이 배제된 파렴치한 부의 획득을 우리가 조장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사회적 유동성이 적은 사회일수록 그만큼 더 죽어간 사회라고 간주된다. 그 세습화 과정에 기여했다면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죽어가게 방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일이 개인들에 의해 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전지용〈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