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양배추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4년 11월 04일(월) 00:00
‘사람은 이끼나 부패물이나 양배추가 아니다’라는 이 유명한 말은 어떤 설명이 필요 없이 자명하고 명확하게 보인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불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동물도 아니고 한낱 이끼와 양배추와 비교라니! 하지만 사람은 양배추가 아니라는 말이 맞는 것이라면, 사람과 양배추의 차이가 분명해야 하고 본질의 차이가 확연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과 양배추의 관계가 외모를 빼고는 절대적인 차이가 점점 흐려지는 것이 문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배추는 그냥 양배추로 가만히 있는데, 사람이 무심한 양배추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사람과 양배추의 차이를 들어서 사람됨을 역설한 철학자 사르트르는 그 차이의 핵심으 로 이렇게 말한다. 양배추는 애초부터 누군가에 의해서 사용할 용도가 정해져 있어서, 그 쓰임에 맞으면 그만이다. 양배추는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지거나 생산되는 다른 사물들처럼 정해진 목적을 위해서 있고, 그 가치가 결정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양배추의 쓰임새는 이미 씨앗 때부터 쓸모가 정해져 있으니, 잘 자라서 정해진 목적을 충족하면 된다. 직접 스스로 고민하고 어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설사 이런 능력이 있다고 이미 정해진 목적은 달라지지 않으니 걱정거리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다. 자기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불필요하다. 그래서 예를 들면 양배추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대신 함부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흉물스럽다고 비난해도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분노하는 양배추는 이미 양배추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위해서 노력하며 스스로 책임지려고 애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물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실현하려고 애쓴다.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의지는 노력하고 성찰하는 자세에서 드러나며, 책임 의식에 대한 태도로 결정된다. 지향하는 것이 곧 자신의 사람됨이며, 그 지향성을 통해서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관심이나 순간적인 호기심 또는 감정적 쏠림이 아니다. 더더욱 무지에서 나오는 맹목적이고 즉자적인 자기 충족본능에 휘둘리지 않고 나가는 자세가 곧 지향성이다. 그리고 지향한다는 것은 선택한 삶의 가치 실현을 위한 의지와 이 의지를 추동하는 열정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곧 양배추의 존재 방식이다.

사람은 지향성을 지키기 위해서 눈을 밖과 세상으로 향하며 관계의 상호성 속에 자신을 세운다. 자기 충족적인 독단의 위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과 이면 상황을 제대로 의식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힘은 깊고 단단한 자기성찰과 상호적 관계 맺기의 능력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즉자적인 존재를 넘어서 대자적 인식이 없이는 사람은 다른 사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의 선택은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사르트르에 따르면 개인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개인의 판단과 선택이 개인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을 선택하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은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서 쉽고 익숙한 길로, 즉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가거나 힘겨운 용기를 내서라도 앞으로 나간다. 그래서 나쁜 선택은 반복되고, 좋은 선택은 드물지만, 삶과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르트르는 사람과 양배추의 차이를 통해서 즉자적이고 즉물적인 삶을 넘어서는 대자적이며 지향적인 삶의 가치를 강조한다. 대자적 관계 속에서만 사람은 주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대자적 관계와 삶이 파괴되는 곳에서는 삶과 생명은 도구에 불과하다.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라는 거대한 악이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다. 그렇게 사람은 방황하며, 주춤거리며 실수를 반복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방향과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항상 노력해온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마땅히 그럴 것이다. 다만 지금, 시대적 상황은 어떠한가? 사람 대신에 양배추나 이끼들이 더 많아지는 듯한 이 생각이 부디 근거 없는 착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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