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거침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2020년 03월 06일(금) 00:00
2010년 개봉한 영화 ‘부당거래’에서 부패한 검사 역을 맡았던 배우 류승범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이 대사는 전 국민의 공감을 얻으며 유행어로 자리잡았고 “호의를 계속 베풀면 ‘호갱’이 된다” 등 다양한 패러디를 낳았다.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마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친절과 배려, 환대와 겸손은 손해 보는 일이 되었고, 스스로 나약한 자, 패배자, 낮은 자임을 인정하는 표시가 되었다. 양보도 마찬가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로 알려진 홍세화 작가는 11년만에 펴낸 ‘결: 거침에 대하여’에서 사람도, 인간관계도, 사회도 모두 섬세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거친 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환대와 배려, 겸손을 품은 사람이 약자가 되는, 정제되지 못한 사회에서 우리는 둥글어지기보다는 뾰족하고 거칠어져야만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조금 더 낮게 걸으며 지배와 복종에 맞서는 자유인으로, 설령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극소수일지라도 함께 연대해 그 길을 한 번 가보자고 외친다.

책은 1부 ‘자유, 자유인’, 2부 ‘회의하는 자아’, 3부 ‘존재와 의식 사이의 함정들’, 4부 ‘난민, 은행장 되다’ 등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권력과 물질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에 나를 짓고, 자유인으로 남기 위해 세속 사회에서 패배자가 될 것을 사유하며 2부에서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 대신, 회의하는 자아가 될 것을 성찰한다. 3부에서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회의하는 자아를 갖자고 말하며 4부 우리의 이웃과 난민에 대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겨레출판·1만5000원>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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