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산악인, 중국 ‘하바설산’에 오르다<상> 하바촌서 베이스캠프까지
3000m 넘어서자 가빠진 숨소리…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듯
비행기·열차·버스 타고 하바촌 도착
산행 첫날 아침 밤새 내리던 비 그쳐
70대부터 10대까지…27명 화합 등반
아름드리 원시림 사이 야생화 보며
중력 거슬러 한발 한발 고소증과 싸움
2019년 09월 03일(화) 04:50

정상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에서 결의를 다지는 영호남 원정대원들.



















만년설 뒤덮인 설산은 산악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영호남 산악인들이 지난 8월 11~19일 7박9일간 중국 윈난성(雲南省) 하바설산(哈巴雪山·해발 5396m) 원정등반에 나섰다. 광주시가 후원한 이번 등반은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영호남 산악인과 클라이밍 꿈나무 등 총 27명이 참여했다. 하바설산 등반기를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본격 산행 앞두고 새벽비에 가슴 졸여=영호남 중국 하바설산(哈巴雪山) 원정대는 지난 8월 11일 오후 6시30분 인천공항에서 쿤밍(昆明)행 비행기에 올랐다. 4시간여 동안 황해와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2620㎞를 비행해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쿤밍 창수이(長水) 국제공항에 내렸다. 이튿날 오전 쿤밍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리장(麗江)으로 향했다. 그리고 리장역에서 다시 전세버스로 옮겨 타고 본격적인 등반의 출발점인 해발 2600m의 하바촌(哈巴村)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후탸오샤(虎跳峽)에 들렀다. 호랑이가 강을 건너뛰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양쯔강 협곡이다. 황토빛 격랑은 포효하는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후탸오샤 일대는 양쯔강이나 장강(長江)대신 ‘진사강’(金沙江)으로 불린다. 버스는 협곡의 급경사 산허리에 금을 그은 듯 지그재그로 나 있는 편도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달렸다. 오른편 차창 너머로 ‘위룽(玉龍)설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여름에 마주하는 설산은 경이로웠다. 하바설산은 왼쪽 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리장에서 후탸오샤까지 2시간, 다시 후탸오샤에서 구불구불한 산 도로를 따라 하바촌에 닿기까지 꼬박 2시간이 걸렸다.

8월 14일 새벽,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 당일에 큰비를 만난 것이었다. 간밤 늦게 시작된 비는 천둥을 동반하며 밤새도록 쏟아졌다. 새벽이 돼도 그칠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정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빗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과연 산행을 할 수 있을까?’우려스러웠다. 원정대를 책임진 임승진(61·치과원장) 단장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 차례 밖에 나와 쏟아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날이 새며 비가 잦아들었다. 오전 8시 중국식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할 때쯤 완전히 비가 개었다. 자연히 대원들의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비가 오면 구질구질한데, 비가 그친 것이 우리 복이네.”

정기석(60·살레시오 산악회) 대원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배낭을 다시 꾸렸다. 16일 정상 등정때 사용할 피켈과 아이젠 등 장비와 두꺼운 방한의류는 카고백에,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동안 먹을 행동식과 필수용품은 등에 짊어질 작은 배낭에 챙겼다. 20㎏ 가량의 카고백은 노새 잔등에 4개씩 실어 운반하게 된다.

8월 14일 오전 9시 20분, 산행준비를 마친 20여명의 대원들은 하바촌 숙소를 나서며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일정은 해발 2600m의 하바촌에서 해발 4100m의 베이스캠프까지 7㎞를 가야한다. 계속 오르막길이다. 고도 또한 하루 만에 무려 1500m를 올려야한다. 출발부터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고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영호남 산악인 화합하고 우정 다지는 등반=(사)대한산악연맹 광주시연맹(회장 임승진)은 영·호남 산악인들의 화합과 우정을 다지는 합동 고산원정을 기획했다. 대상 산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샹그릴라(香格裏拉)현에 자리한 하바설산으로 정했다. 해발 5396m에 달해 정상 부근은 늘 만년설이 쌓여있는 설산이다. 그렇지만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피켈과 아이젠 등 안전장비를 갖추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하바’(哈巴)는 리장 등 설산 주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나시족(納西族) 언어로 ‘황금 꽃’(金子之花朶)을 의미한다. 일출이나 일몰때 노을빛에 만년설 정상부가 붉게 물들어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광주 원정대원은 22명. 조선대 산악회 OB와 광주교대 산악회 OB, 바자울 산악회, 살레시오 산악회, 백악산악회, 무등산악회, 황평주 등산교실 등에서 참여했다. OB들은 대학 시절부터 수십 년째 산과 벗해온 노장 산악인들이었다. 영남지역 원정 대원으로는 이상배 (사)영남 등산문화학교 이사장과 최은희 양산 스포츠 클라이밍 센터장, 스포츠 클라이밍을 배우는 중·고생 3명 등 총 5명이 참가했다.

참가대원들의 연령대는 70대부터 10대까지 폭 넓었다. 최고령인 임건남(75) 무등산악회 운영위원장과 최연소인 고준호(15·경남 양산중 3년)군의 나이차는 60년에 달한다.

임승진 단장은 “그동안 영·호남의 지역적·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70대부터 10대까지 3대(代)가 함께하는 산행은 처음”이라면서 “60~70대의 노련함과 지혜, 10대 청소년들의 희망과 도전, 열정이 어우러지는 의미 있는 산행”이라고 강조했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대열 앞에 마을부터 따라온 누렁이가 앞장을 섰다. 산행은 25분 걷고 5분 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 숲속으로 산길이 이어졌다.

출발한지 1시간 30분가량 흘렀을 때 해발 3070m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소나무와 전나무 숲을 벗어나 초원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졌다. 초록빛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쉽게도 걷는 내내 비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아 산 정상을 볼 수는 없었다.

등산로는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질척거렸다. 재미있게도 사람이 딛는 자리와 말이 딛는 자리가 달랐다. 단단한 이랑과 물렁한 고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반복됐다. 발아래 흙상태를 잘보고 안전하게 발 디딜 자리를 골라야 했다. 자칫 발 템포를 잘 맞추지 못하면 수렁 같은 진흙탕 속에 등산화가 빠지곤 했다.

방걸원 원정대장(바자울산악회 회장·광주대 IT자동차학과 교수)은 손목에 찬 GPS 시계를 보며 원정대 진행속도가 ‘평균 시속 1.1㎞’라고 체크했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대원들의 마음 같지 않게 발걸음은 더뎌지고 있었다.

대원들은 하바촌을 출발한지 3시간 30분이 지나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고도는 3420m이었다. 두발로 걷는 대원들이나 카고백을 싣고 가는 말 모두 쉬어가는 곳이었다. 대원들과 나시족 가이드들은 물론 말들도 30분 동안 휴식하며 허기를 채웠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고소증세와 싸움=중력을 거슬러 힘겹게 한발, 한발 발걸음을 옮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힘과 두 발로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688~742)의 한시 <관작루에 올라>(登觀鵲樓)를 떠올려 본다.

“밝은 해는 서산으로 지고(白日依山盡)/ 황하의 물은 바다로 흘러드네(黃河入海流)/ 멀리 천리 밖을 보고자 하면(欲窮千里目)/ 누대 한층 더 올라가야 하리(更上一層樓)”

“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것 같아요!”

최연소 대원인 고준호(15)군의 말에 주변 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곧 고소증세임을 알 수 있었다. 고 군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이용철 등반대장(55·조선대산악회 OB)이 고군의 배낭을 받아 자신의 배낭위에 얹었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다른 대원들의 발걸음 역시 느려졌다. 숨소리도 점차 거칠어졌다. 누군가 뒤에서 배낭을 잡아당기는 듯 걸음 내딛기가 힘들어져 갔다.

흔히 3000~4000m대의 고산이라면 나무한 그루 자라지 않는 황량한 풍경을 상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하바설산은 몇 군데의 초원을 제외하면 울창한 원시림이었다. 덕분에 강렬한 햇살을 피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한국 산에서 눈에 익은 소나무와 전나무, 주목, 낙엽송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한 아름도 아니고 두 아름, 세 아름이 넘는 거목들이었다. 나무마다 초록 이끼류가 치렁치렁 늘어져 있었다. 나무 아래 바위에도 푸른 이끼들로 뒤덮여 있었다. 벼락을 맞았는지, 아니면 태풍이 부러졌는지 고사목들이 등산로변 군데군데 우뚝 서 있었다.

산행하는 내내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눈길을 끌었다. 꽃잎 색깔도 다양했다. 그만큼 식물들이 자생하기에 적합한 기후이기 때문이리라.

4000m를 넘어서니 자작나무처럼 나무 표면이 하얗고, 날렵한 유선형 모양의 이파리를 한 낯선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 이름이 너무 궁금해 중국 가이드에게 필담으로 물었다. 가이드는 수첩에 나무이름을 적고 ‘뚜 뒤엔 후아’라고 발음을 했다. ‘두견화(杜鵑花)’였다. 꽃이 만개하는 4~6월에 하바설산을 찾는 이들은 화려한 꽃터널을 만끽하며 걷을 수 있을 터.

가끔씩 날아가는 제트기 굉음만이 21세기 숲 속을 걷고 있음을 일깨워졌다. 바위에 엉덩이를 걸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바람소리겠지’ 미뤄 짐작했다. 그런데 불과 몇 발짝 걷지 못하고 진짜 물줄기와 마주했다. 하바설산 만년설이 녹아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이었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물소리가 요란했다.

마침내 목적지인 베이스캠프, ‘하바설산 대본영 이참(大本營 二站·해발 4100m)에 도착한 것이다. 하바촌 숙소를 출발한지 꼬박 7시간 20분이 소요된 오후 4시 40분이었다. 총거리는 7.2㎞.

배낭을 푼 대원들은 이튿날 캠프에서 머지 않은 해발 4300m의 고지대를 찾아 고소적응 훈련을 했다. 에델바이스를 비롯한 많은 야생화들이 피어있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운무 사이로 만년설로 뒤덮인 하바설산 정상부가 빛났다.

/글·사진=중국 윈난성 송기동 기자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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