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도시의 경쟁력 올리는 디자인시티 성공 브랜딩
2025년 09월 07일(일) 11:05

코펜하겐의 아이콘인 초록색 벤치.

런던의 빨강색 2층 버스, 뉴욕의 노랑색 택시, 코펜하겐의 초록색 벤치…. 이들의 공통점은 각 도시를 상징하는 공공디자인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TV나 잡지 등에서 빨강색 버스나 노란색 택시가 등장하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더라도 ‘자동적으로’ 런던이나 뉴욕을 떠올리게 한다.

초록색 벤치는 북유럽의 디자인 메카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초록색 나무와 철제로 디자인된 벤치는 공원에서부터 공항이나 미술관까지 도시 곳곳에 2000여 개가 설치돼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100여 년 전, 시민들의 쉼터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벤치는 디자인 강국의 면모를 보여 주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삭막한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는 곳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 서초구가 첫 선을 보인 박스형 가로수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서초구는 무성하게 자란 가로수가 신호등과 교통표지판을 가려 보행자 안전과 도심 경관에 장애물이 되자 사각형의 가로수 정비 사업을 진행했다. 무분별한 가지치기로 흉물이 된 가로수를 네모 형태로 깔끔하게 손질해 파리의 명물로 바꾼 프랑스 상젤리제 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벤치나 가로수, 광고 간판, 공사장 가림막 등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게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은 국내 지자체들 사이에서 키워드가 됐다. 지난 2010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로 선정된 서울시를 비롯해 인천, 부산, 영주 등 각 자치단체들은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던 디자인 관련 업무를 총괄할 전문부서를 신설하는가 하면 공공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건축도시’로 변신한 영주시

인구 10만 명의 경북 영주시는 중소 도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행보를 펼치고 있다. 지난 2009년 전국 최초로 총괄계획가 제도를 도입한 이후 삼각지 녹색거리, 역사문화거리, 시청 앞 등 권역별 공공건축계획을 수립해 도시건축과 공간의 품격을 높였다. 이어 디자인 관리를 위한 운영 규정 제정 및 디자인 관리단을 만들고 2015년 영주시 ‘도시건축관리단’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각종 공공건축 및 디자인 관련 사업을 기획·추진하고 있다. 총괄계획가는 공공건축 디자인 품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지자체장 위촉을 받아 주요 도시건축 공간 디자인 정책과 통합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민간 전문가다.

경북 영주시 노인복지관 전경.
특히 영주시 노인복지관은 총괄계획가의 역량을 보여준 공간이다. 지난 2017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및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장애인복지관은 ‘2018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같은 사례가 알려지면서 매년 1500명 이상의 지자체와 관련 기관이 영주의 공공건축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가 하면 지난 6월에는 국토교통부 주최로 전국 11개 지자체가 참가한 ‘2025년 총괄계획가 지원사업’간담회가 열렸다.

◇2028년 세계디자인 수도 선정된 부산

지난해 2030 엑스포 유치 실패로 낙담해 온 부산시는 지난 7월 중국 항저우를 제치고 ‘2028세계디자인수도(WDC·World Design Capital 2028)’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세계디자인수도는 세계디자인기구(WDO)가 2년마다 디자인을 통해 경제·사회·문화·환경 발전을 이끄는 도시를 선정해 국제 무대에서 조명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부산은 세계에서 11번째, 국내에서는 서울(2010)에 이어 두 번째 WDC 도시가 됐다.

부산시가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데에는 ‘모두를 포용하는 도시,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Inclusive City, Engaged Design)’을 주제로 내건 시민 참여형 디자인 정책이 있었다. 특히 주거·환경·안전·건강 등 8개 분야에 걸쳐 시민이 문제를 진단하고 맞춤형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공공디자인 진단 지표를 자체 개발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부산시는 세계디자인기구(WDO)로부터 ‘2028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되는 등 글로벌 디자인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옛 시장관사를 문화공간으로 바꾼 도모헌은 WDO 실사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부산시에 따르면 WDO 실사단은 옛 시장 관사를 문화공간으로 바꾼 도모헌을 시작으로,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부산의 개방성과 포용성 회복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경험을, 북항에서는 항만 중심 기능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바꾼 도시 디자인을 확인했다. 영도 봉산마을과 F1963, 블루라인파크는 각각 빈집 재생, 민간 주도의 산업 유산 리모델링, 폐선 철도의 친환경 개발의 사례로 소개됐다.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 서울의 총감독을 지낸 나건 부산시 총괄 디자이너는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서울이 세계디자인수도에 선정되면서 지금의 세계적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2028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으로 부산이라는 허브도시를 가장 빠른 시간에 전 세계에 브랜딩하고, 행사 개최를 시작으로 부산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디자인 발신지, 서울 DDP

지난 2007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10년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 프로젝트에 도전, 국내 최초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디자인을 통해 시민의 삶이 개선되고, 도시 행정체계에 디자인이 적용되는 지, 시 산하에 디자인 기관이 있는 지 등이 심사 척도였다. 당시 초선이었던 오세훈 시장은 지난 2023년 재선 후 ‘디자인 서울 2.0’을 발표하면서 서울을 글로벌 디자인도시 톱5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서울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세계적인 디자인 발신지로 키워가고 있다. DDP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잡은 빛축제인 ‘서울라이트’.
‘디자인 서울’을 이끈 동력의 중심에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있다. 도시 디자인 사업을 총괄하고 중장기 도시 디자인 정책을 총괄하는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지난 2014년 옛 동대문 운동장 터에 들어선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기반으로, K-디자인의 발신지로 발돋움 하고 있다.

초기 ‘디자인 서울 1.0’이 도시에 여백을 주는 정책이었다면 디자인 서울 2.0은 액티브 디자인을 기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디자인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서울 빛 축제인 ‘서울 라이트’, 모두를 위한 디자인인 ‘유니버설 디자인 프로젝트’ 등이 좋은 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컨트롤타워인 서울디자인재단은 DDP를 단순히 개인이나 업체에 빌려주고 관리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콘텐츠나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시설을 운영하는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초 11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서울 라이트 DDP’는 총 51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DDP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일대에서 펼쳐진 행사장에는 친구, 연인, 가족 단위 방문객은 물론 중장년까지 참여해 미디어 파사드, 레이저 아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며 디자인의 향연에 빠졌다. 디자인을 통해 시민들의 일상을 ‘문화적으로’ 변화시키는 DDP의 정체성을 보여준 현장이다.

◇‘도시 전체가 디자인 박물관’ 헬싱키

핀란드가 ‘디자인 강국’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엿볼 수 있는 곳(?)은 비행기이다. 핀란드 국적기 핀에어를 타면 기내식 트레이에 등장하는 독특한 냅킨을 접하게 된다. 세련된 도트 문양의 냅킨은 다른 외국 비행기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함이 있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 도트는 핀란드의 국민 기업 ‘마리메코’와 핀에어가 콜라보한 것으로 한낱 일회용 냅킨이지만 북유럽의 미적 감성을 느끼게 한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지난 2012년 ‘디자인을 일상 속으로’(Embedding Design in Lif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 디자인 수도로 뽑힌 데 이어 2014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디자인 창의도시이자 디자인 강국이다. 그래서인지 헬싱키 시내를 거닐다 보면 핀란드 출신의 모더니즘 디자이너 알바알토에서부터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중앙역 등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건축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패션브랜드 마리메코와 아딸라에는 ‘피니시디자인’(Finnish design: 핀란드식 디자인)의 모던한 제품과 기념품을 구입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디자인 강국인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는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건축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헬싱키 도심에 있는 아모스 렉스 미술관 전경.
그중에서도 오디 도서관과 아모스 렉스 미술관은 단연 압권이다. 지난 2018년 문을 연 오디도서관은 2018년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0여 년 전부터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간구성과 운영 등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모양의 디자인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얼핏 보면 도서관으로 생각하지 못할 만큼 파격적이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면 배 갑판을 연상케 하는 구조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1층은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를 즐길 수 있는 등 복합문화공간을 방불케 한다.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헬싱키시가 2018년 오디도서관과 함께 내놓은 또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이다. 오디도서관이 도시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 지은 건축물이라면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1930년대의 건물을 재생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아모스렉스 미술관을 둘러 보면 가장 먼저 기발한 스타일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십여 년전에 건립된 건물과 라사팔라치 광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특히 하얀색 타일을 붙인 기하학적인 돔 형태의 구조물은 광장과 어우러져 고유한 아우라를 풍긴다.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10m의 굴뚝과 잠망경 모양의 5개 유리창은 마치 미래도시로 여행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도시 디자인은 어떨까. 2007년부터 디자인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국제도시 디자인 포럼’ 등을 개최했지만 아쉽게도 광주의 도시 디자인은 큰 점수를 주기에 부족하다.

광주 하면 가장 먼저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는 획일화된 아파트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삭막하기 짝이 없다. ‘아시아의 문화수도’라는 화려한 청사진에 올인한 나머지 소시민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일상적인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칙칙한 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공원·벤치·교통표지판·광고간판 등에서도 광주만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공공디자인을 찾기 힘들다. 지난 2005년 창설된 이후 11회째 이어지고 있는 ‘디자인비엔날레’ 개최지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도시의 품격을 완성하는 공공 디자인은 이제 도시의 경쟁력이 됐다. 도시 전체의 미적·기능적 가치를 높일뿐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의 질까지 향상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박진현 기자, 광주일보DB, 부산시·영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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