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 튀지 않는 겸손함 … 건축, 또 다른 자연이 되다
2025년 09월 01일(월) 19:30
<41> 제주 옛 ‘소라의 성’과 제주대 수산학부 건물
■ 옛 ‘소라의 성’
곡선·직선따라 4면이 다른 표정 독특
대표 건축가 故 김중업 선생 설계 추정
4개 기둥에 제주 ‘몽돌’ 박아 포인트
오름·푸른 바다 배경 하나의 예술 작품
■옛 제주대 수산학부 건물

소라의 성 건물 동남쪽 전경. 남쪽으로 건물 남쪽 발코니(로지아, loggia)가 눈에 띈다. 이 발코니를 지지하는 4개 기둥에는 제주 바다에서 나는 ‘몽돌(자갈)’을 박아 포인트를 줬다.

자연에 거슬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건축물은 자연 고유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것이라는 데 토를 달 이는 없을 것이다.

물질적인 재료를 이용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낸 구조물은 결국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대치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그리 거슬리지 않는 구조물,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는 건축물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비(非) 자연적인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라도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자연에 녹아드는 멋진 작품이 될 수도 있고 흉물이 되기도 한다.

포근한 오름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소박함이 강조된 건축물.

제주의 독특한 경관 속에서 자연보다 더 튀지 않고 겸손함을 강조하는 건축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조화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곳곳에도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상모리 알뜨르비행장 일원에 있는 비행기 격납고와 일제 동굴진지를 비롯해 섯알오름 학살터, 육군제1훈련소 건물 등은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문화유산이고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건축물이 한라산과 오름 등 자연을 배경으로 우리를 시간 여행으로 초대한다.

그 중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옛 제주대학 수산학부 건물(현 서귀중앙여자중학교)과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옛 ‘소라의 성’도 소중한 건축 자원이다.

옛 제주대학 농과대학 수산학부 건물(현 서귀중앙여자중학교). 남쪽은 수직적 요소가 잘 반영됐다. 건물 내부로 빛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세로로 길쭉한 창을 많이 냈다.






◇소정방 폭포 인근 절벽에 들어선 옛 ‘소라의 성’...서귀포 앞바다 한눈에

옛 ‘소라의 성’ 건물은 곡선과 직선에 의해 4면이 각각 다른 표정을 지으며 서귀포시 소정방폭포 인근 해안 절벽에 지어졌다.

바다와 해안, 소나무 숲, 야자수 등 주변 경관이 외로이 서 있는 건물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1969년 12월 지상 2층(연면적 234㎡) 규모로 지어졌다. 서류상 이름이 남아있지 않아 설계자는 공식적으로 ‘미상’이지만 독특한 건축 양식에 미뤄 학계 등 다수 의견은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고(故) 김중업 선생(1922~1988)이 설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중업 선생이 제주에 남긴 건축물은 용담동의 옛 제주대학 본관, 서귀포시 동홍동의 옛 제주대학 농학부 본부 건물 및 도서관, 수산학부 건물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 노후화 및 안전 문제로 철거되면서 지금은 서귀중앙여자중학교가 들어선 옛 제주대학 수산학부 건물만 남아있다.

김중업 선생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소라의 성’이 한국 근대건축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건물 남쪽으로는 별도의 지붕이 있는 발코니(로지아, loggia)가 조성됐고, 이 발코니를 지지하는 4개 기둥에는 제주 바다에서 나는 ‘몽돌(자갈)’을 박아 포인트를 줬다.

한동안 개인에 의해 음식점으로 운영됐고 2003년 10월 재해위험지구에 포함됨에 따라 서귀포시가 2008년 7억9100만원을 들여 건물과 주변 토지를 매입했다.

건물 1층은 2009년부터 ㈔제주올레 안내센터로 활용됐다.

서귀포시는 2015년 실시된 일대 해안절벽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용역 결과 장기적인 안전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D등급’이 나옴에 따라 건물 보수·보강공사를 벌여 관광안내소(1층)와 북카페(2층)를 꾸며 2017년 10월부터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소라의 성 2층에 조성된 북카페. 남쪽으로 트인 창 너머로 문섬이 보인다.






◇옛 제주대학 수산학부 건물

옛 제주대학 농과대학 수산학부 건물(현 서귀중앙여자중학교)과 관련된 이야기는 제주대학이 국립대학으로 승격된 1962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1월 문종철 학장이 취임한 이후 제주대학은 대학 발전을 위해 용담동 캠퍼스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적합한 터 확보에 나섰다.

당시 제주대학은 제주시지역에서 새로운 캠퍼스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자연과학 계통의 학과만이라도 서귀포시지역으로 이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농과대학 농학부와 수산학부 이전 방침이 확정되자 제주대학은 1961년부터 터 매입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 1962년 2월 서귀포시 동홍동에 캠퍼스 공간을 확보했다.

기본 시설공사가 마무리된 1964년 2월 농과대학 캠퍼스(지금의 서귀포의료원 일대)로 이전됐다. 당시 농·수산학부는 농학부 본관 및 연구실, 강의실, 도서관, 교수아파트, 창고, 감귤원, 농장 등이 조성됐다.

지금 남아있는 수산학부 건물은 1971년 농학부 부지 남쪽에 연면적 6254㎡,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고 한동안 캠퍼스로 사용되다 1981년 5월 이곳에 서귀중앙여자중학교가 들어섰다.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이 건물은 동서 방면의 ‘1자형’으로 지어진 가운데 측면에 부속 기능의 건축물이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다.

남쪽은 수직적 요소가 잘 반영됐고, 건물 내부로 빛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창을 많이 냈다. 건물 측면(서쪽)은 중세 건축의 특징인 루버(louver, 직사광선이나 빗물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창문 따위에 빗대는 널빤지)로 마감됐다.

남쪽 중앙 현관에 길게 돌출된 구조물과 지면에서 분리된 듯 한 계단 구조가 특징이며 남쪽 벽면은 돌출된 창과 필로티(pilotis, 지상층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도록 개방한 건축 방식) 방식이 일부 반영된 점이 특징이다.

내부 공간 계단도 외부 벽체와 일체화돼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구조를 띠면서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조형성을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근대건축에서 찾을 수 있는 단순하고 기능적인 요소들이 잘 반영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편 김중업 선생은 평양 출신으로 광복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를 지냈고 1952년 한국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해 프랑스 파리에 있는 건축연구소에서 4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하면서 한국의 모더니즘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글=제주일보 김문기 기자 kafka71@jejunews.com

/사진=제주일보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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