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996년~2000년의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필두로 여러 역사공정들을 진행해왔다. 하상주단대공정은 그간 전설상의 왕조로 치부해 왔던 하(夏)나라와 상(商:은나라)의 역사를 실제 역사로 만드는 작업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북공정’(東北工程:2002~2007)은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에서 전개된 고조선·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었다. 동시에 진행한 서남·서북공정은 티베트와 신강 위그루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었다. 어찌 보면 무모한 듯이 보이지만 중국은 지금 ‘중화문명선정공정’(2016~2020)으로 이런 내용을 전 세계에 조직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길림성 집안현에 간 적이 있다. 박물관에서 같이 간 일행들에게 고구려사에 대해서 설명하자 공안이 다가오더니 중단시켰다. 야외에 있는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릉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 고구려사에 대해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신경 쓰는지를 잘 보여 준다.

실제로 중국이 각종 역사공정을 진행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나라는 한국이었다. 고조선·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겠다는데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어찌 가만 있을까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강단 사학자들이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거꾸로 동조하고 나서자 자신감을 가지고 중화문명선전공정에 나서 고조선·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라고 선전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가짜라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나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야’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라고 하는 ‘임나=가야설’을 비롯해서 ‘독도는 일본 것’이라는 따위의 역사 도발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조직적으로 역사 도발을 전개하는데 한국은 마치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손을 놓고 있다. 손을 놓고 있기보다는 중국과 일본 편을 드는 강단 사학자들에게 막대한 국고를 대 주는 것으로 임무를 거꾸로 수행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고양이에게 어물전 맡긴다는 속담 정도로는 부족하고, 이완용·이인직·송병준에게 독립운동에 나서 달라며 돈을 대 주는 격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국고 47억 원을 들여서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들었다. 북한 강역은 물론 경기도까지 중국사의 강역으로 내주었고, 4세기에도 백제·신라·가야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려 놓지 않은 반면 일본에는 강력한 야마토 제국이 열도를 거의 통일했다고 그려 놓았다. 독도는 여러 번 지적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려 오지 않았다. 이런 숱한 문제 때문에 전 정권에서도 폐기된 ‘동북아역사지도’를 새 정권 들어서 수장이 바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다시 제작하겠다고 나서 많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국교원대 송모 교수가 EBS에 나와 ‘단군조선은 없었다’는 따위 조선총독부와 똑같은 말로 개천절을 맞은 국민들에게 역사 테러를 가했다.

북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북한의 역사학자들이라면 국고로 만드는 지도에서 자국의 강역을 모두 중국에 넘겨주고 독도는 끝내 그리지 않거나 개천절을 맞아 ‘단군은 없었다’ 따위를 강연하겠다는 발상이 가능할까? 북한 학계는 1962년에 이미 한사군은 모두 요동에 있었고, 임나는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 열도에 있었다고 정리했다. 물론 단군도 실존 인물이라고 정리했다. 반면 남한 강단 사학계는 아직도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가야는 임나며 단군은 신화라고 우기고 있다. 남한이 북한보다 물질은 풍부할지 몰라도 정신은 크게 썩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창에서 독도가 사라진 한반도기가 휘날리자 일본 해군이 욱일승천기를 달고 진해에 입항하겠다고 나섰다. 남한의 정신세계는 과연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까? 오랜만의 남북 대화가 남한은 북한에 물질을 지원해 주고, 북한은 정신을 지원하는 것으로 서로 돕는다면 양쪽 다 사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