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이후 7권의 시집과 다수의 시론집, 평론집을 발간한 이수명 시인이 신작 시집 ‘물류창고’를 펴냈다.

그동안 시인은 대상을 중심으로 세계를 읽어내는 언어의 발견을 시작으로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물류창고’라는 제목으로 모두 열 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특별한 구분 없이 예고 없이 등장하는 ‘물류창고’를 통해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어려운 행위들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공간으로서의 물류창고는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현대의 몰개성화, 익명성, 복제화 등의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열 편의 제목만으로 구별할 수 없게끔 일련번호를 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작시가 아니고 그저 ‘물류창고’라는 시로서 흩어져 있는 별개의 작품들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왜 물류창고일까? 이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물류창고는 물품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상품을 입고하고 출고할 때 열린다. 이곳에는 운반되는 물품이 있으며 이를 매개하는 주체 그리고 운반과 보관 등의 행위가 있다. 어디에나 있는 물류창고이지만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렵다.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과 같이 느껴지는, 무한 반복의 공간, 지루한 반복 속에서 무능과 불능을 독특하고 특수한 언어 안에서, 언어에 의해, 한 번 더 확인하면서, 시는 어디론가 이행하며, 새로운 문을 연다”며 고 평한다.

<문학과지성사·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