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다 덮는 안전모를 쓴 캐릭터 ‘오기사’로 유명한 건축가 오영욱의 여행기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맛깔스런 글쓰기와 함께 책 곳곳에 담긴 일러스트를 보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입가에 미소도 번진다. 그가 이번에는 철도 여행기를 펴냈다. 1만231㎞를 대륙횡단열차와 함께 보낸 여정이다.

그의 신작 ‘파리발 서울행 특급열차-기차 덕후 오기사의 국제선 열차 탑승기’는 파리에서 출발해 독일, 폴란드, 벨라루스, 러시아, 몽골, 중국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담은 기록이다.

지난 4월 떠난 그의 일정은 이렇다. 파리에서 출발해 2박 3일간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모스크바를 출발해 4박 5일간 기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연결편을 타기 위해 2박 한 후 2박 3일간 울란바토를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다. 1박 후 베이징을 출발해 밤기차로 단둥 압록강 철교 앞에 도착하고 마지막으로 단둥을 출발해 서울에 도착한다.

천천히 달리는 대륙 횡단 열차에 몸을 실은 그는 열차 안에서, 그리고 체류지에 잠시 머물며 보고 느낀 풍경과 생각을 글과 일러스트, 사진, 지도 등에 담아냈다.

그는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하루가 한두 시간씩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경험은 비행의 시차부적응 현상을 방지하는 동시에 대지의 거대함을 체득하는 과정”임을 깨닫고 “철도 횡단의 여정은 순례길을 걷는 과정에 버금가는 잡념들과의 싸움으로 아팠던 일들을 지워가고, 잘못했던 일들을 반성하며, 후회되는 일들에 화해를 청하다 보면 어느새 아득했던 종착역에 도착하는 환희를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매일 시간시간대 별로 기록을 남겼다. “뭘 이렇게 꼼꼼히 기록했나” 할 정도로 꼼꼼히 기록한 글과 그림에는 웃음도 뭉클함도 함께한다.

이 책의 재미는 부록처럼 실린 뒷 이야기다. ‘여정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대륙 횡단 열차에 타볼 만한 이유들’, ‘평생 장거리 철도여행을 하지 않을 이들’을 위한 ‘열차 대리 체험 요소’들,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기차안에서의 생활, 기차에서 먹은 음식까지 세심히 적었다. ‘새 중앙역 구상’, ‘극동아시아 노선도와 유라시아 노선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합된 ‘한반도 철도 노선도’를 그리며 한반도 대륙 철도시대를 꿈꾸기도 한다.

5월,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는 다시 열차 여행을 기약한다. 유레일 패스로 떠나는 ‘48일간의 유럽일주’, 미국 열차를 섭렵하는 ‘신대륙의 희망과 추억’, 온갖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떠나는 일본 철도여행, 그리고 서역기행과 남국열차다. ‘열차덕후’라면 솔깃한 기획이다.

<페이퍼스토리·1만6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