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생각'] 삶은 죽음을 품는 힘
2018년 05월 10일(목) 00:00 가가
지난해 가을의 늦은 태풍으로 미뤄야 했던 야쿠시마 답사를 다녀왔다. 살아 있는 신화인 조몬삼나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조몬삼나무는 일본인들이 신화 속의 나무로 소중히 여기는 나무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일본 남단의 작은 섬, 야쿠시마. 섬 전체의 30퍼센트 가까이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섬이다.
조몬삼나무는 비가 많고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일본 특산종 삼나무인데, 선사시대의 연호인 조몬시대 때부터 살아 있던 나무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 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1900년대부터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의 해안 지방에서 심어 키우는 늘푸른나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삼나무 가운데에 가장 오래된 나무는 바로 야쿠시마의 조몬삼나무다. 일본인들은 조몬삼나무의 수령을 무려 칠천이백 년이라고 한다.
대관절 그토록 오래된 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측정할까? 나무의 나이를 아는 정확한 방법은 무엇보다 나이테를 헤아리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 내지 않고도 나이테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장추라는 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생장추는 가운데가 텅 빈 대롱 모양의 드릴이다. 생장추를 나무줄기 중심부에 뚫었다가 뽑아내면 텅 빈 대롱 안쪽에 나이테 조직이 채취되고 그 조직에서 나이테를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나이테 조직이 온전히 남아 있느냐가 문제다. 나무줄기는 바깥 부분의 변재와 안쪽 즉 나이테가 남아있는 심재로 나누는데, 심재는 이미 죽은 조직으로 이루어졌다. 죽은 조직은 곧 썩기 쉬운 조직이다. 그래서 오래된 나무들은 심재의 안쪽, 즉 나이테의 맨 안쪽부터 서서히 썩어 사라지기 십상이다.
결국 생장추를 이용해 나이테 조직을 채취할 수야 있지만, 이미 사라진 나이테가 적지 않기 때문에 오래된 나무의 나이는 헤아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대개의 경우 삼백 년 쯤 넘은 나무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삼백 년 이상 된 나무의 나이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조몬삼나무의 수령을 칠천이백 년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과학적 근거는 없다. 조몬시대에 이 나무가 살아 있었는지를 증거할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최근 조몬삼나무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때 과학자들의 검증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테가 약 2200년까지는 확인됐다고 한다.
조몬삼나무도 오래된 여느 나무와 마찬가지로 나이테 안쪽은 오래전에 썩어 들었기에 더 이상의 과학적 추정은 어렵다면서 조몬삼나무의 나이를 ‘적어도 2200년은 넘었다’로 발표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본인들은 조몬삼나무의 수령을 7200년이라고 강조한다. 하긴 조몬삼나무의 수령이 7200년이 안 된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나무의 나이는 알 수 없다.
조몬삼나무라는 거대한 생명체는 제 중심에 죽음을 품고 살아온 것이다. 이천 년이든 칠천 년이든 나무는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제 안에 죽음을 품고 살았다. 이미 사라진 나이테는 물론이고, 선명하게 남아 있을 나이테 역시 죽음의 흔적이다. 바깥쪽으로 끊임없이 새 생명을 틔우면서, 안으로는 죽음을 쌓아 온 것이다. 현대 과학으로는 나무 안에 담긴 죽음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의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줄기 위에 돋아난 새 가지와 이파리는 여느 젊은 나무 못잖게 싱그러웠지만, 울퉁불퉁한 그의 굵은 줄기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어우러진 변증의 생명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싱그러운 젊음과 험상궂은 늙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야릇한 표정이었다. 그 야릇함은 살아 있는 그의 줄기 안쪽에 쌓아 둔 죽음이 꿈틀거리는 흔적 때문이라는 생각이 잇따라 들었다. 제 몸 안의 죽음을 넉넉히 품지 못했다면 나무는 진작에 텅 빈 줄기만 남아 쓰러졌을지 모른다.
산다는 건 어쩌면 죽음을 품어 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나무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그러할 것이다. 생명은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바로 삶은 죽음을 품고 산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제 몸 안에 죽음을 품지 못하고, 죽음이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생명은 스러지는 법이다.
하나의 생명체만 그런 건 아니다. 온갖 생명들이 모여 이뤄 가는 세상살이 역시 죽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건강성이 결정된다. 평화와 전쟁의 변증 논리를 짚어보게 하는 이즈음 더 건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죽음의 세력을 품어 안는 법을 곰곰 궁리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무 칼럼니스트〉
조몬삼나무는 비가 많고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일본 특산종 삼나무인데, 선사시대의 연호인 조몬시대 때부터 살아 있던 나무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 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1900년대부터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의 해안 지방에서 심어 키우는 늘푸른나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삼나무 가운데에 가장 오래된 나무는 바로 야쿠시마의 조몬삼나무다. 일본인들은 조몬삼나무의 수령을 무려 칠천이백 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조몬삼나무의 수령을 칠천이백 년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과학적 근거는 없다. 조몬시대에 이 나무가 살아 있었는지를 증거할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최근 조몬삼나무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때 과학자들의 검증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테가 약 2200년까지는 확인됐다고 한다.
조몬삼나무도 오래된 여느 나무와 마찬가지로 나이테 안쪽은 오래전에 썩어 들었기에 더 이상의 과학적 추정은 어렵다면서 조몬삼나무의 나이를 ‘적어도 2200년은 넘었다’로 발표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본인들은 조몬삼나무의 수령을 7200년이라고 강조한다. 하긴 조몬삼나무의 수령이 7200년이 안 된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나무의 나이는 알 수 없다.
조몬삼나무라는 거대한 생명체는 제 중심에 죽음을 품고 살아온 것이다. 이천 년이든 칠천 년이든 나무는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제 안에 죽음을 품고 살았다. 이미 사라진 나이테는 물론이고, 선명하게 남아 있을 나이테 역시 죽음의 흔적이다. 바깥쪽으로 끊임없이 새 생명을 틔우면서, 안으로는 죽음을 쌓아 온 것이다. 현대 과학으로는 나무 안에 담긴 죽음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의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줄기 위에 돋아난 새 가지와 이파리는 여느 젊은 나무 못잖게 싱그러웠지만, 울퉁불퉁한 그의 굵은 줄기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어우러진 변증의 생명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싱그러운 젊음과 험상궂은 늙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야릇한 표정이었다. 그 야릇함은 살아 있는 그의 줄기 안쪽에 쌓아 둔 죽음이 꿈틀거리는 흔적 때문이라는 생각이 잇따라 들었다. 제 몸 안의 죽음을 넉넉히 품지 못했다면 나무는 진작에 텅 빈 줄기만 남아 쓰러졌을지 모른다.
산다는 건 어쩌면 죽음을 품어 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나무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그러할 것이다. 생명은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바로 삶은 죽음을 품고 산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제 몸 안에 죽음을 품지 못하고, 죽음이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생명은 스러지는 법이다.
하나의 생명체만 그런 건 아니다. 온갖 생명들이 모여 이뤄 가는 세상살이 역시 죽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건강성이 결정된다. 평화와 전쟁의 변증 논리를 짚어보게 하는 이즈음 더 건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죽음의 세력을 품어 안는 법을 곰곰 궁리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