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개혁은 수단과 목적이 일치해야
2018년 04월 26일(목) 00:00 가가
조선에서 가장 개혁적인 정치 집단은 조광조가 주도하던 사림파였다. 사림파가 개혁을 통해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사회는 지치(至治)사회였다. 지극한 정치, 지극한 다스림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치(至治)는 요·순(堯舜) 같은 성왕(聖王)들이 펼쳤던 정치를 뜻한다.
성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인(聖人)이 되어야 하는데 그를 위한 학문이 대학(大學)이었다. 유학의 경전 중의 하나인 ‘대학’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모두 외웠던 것인데, 큰 학문의 길(大學之道:대학지도)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한다. 성인이 되는 큰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明明德:명명덕),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 있고(親民:친민), 지극한 착함에 머무는 데 있다(至善:지선)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말장난 같지만 ‘밝은 덕이 밝게 빛나는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야 했다. 공자가 임금이 자기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세습보다 덕이 있는 인물에게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크게 높인 것도 ‘밝은 덕이 밝게 빛나는 사회’의 모습을 말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지치는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야 했다. 백성들의 경제적 삶이 풍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즘 말로 양극화가 없어야 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고대의 삼대(三代), 즉 하·은·주(夏殷周)를 이상 사회로 높인 것은 그 당시의 토지 제도가 정전제(井田制)였기 때문이다.
9백 무(畝)의 토지를 우물 정(井) 자 형태로 나누면 아홉 구획의 토지가 나오는데, 여덟 가구가 1백 무씩 경작하고 가운데 1백 무는 공동으로 경작해서 행정 비용으로 납부하는 제도가 정전제였다. 모든 백성들이 같은 경제적 지위를 누리는 제도가 정전제였다.
사림파는 이 정전제를 지향했지만 이는 모든 토지를 국유화해서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당시 사림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림파는 한전법(限田法) 시행을 주장했다. 일종의 토지 소유 상한제로서 한 사람이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중종 때 사림파는 균전제(均田制) 실시도 주장했는데, 균전제란 고구려의 형제 민족이었던 북방 선비(鮮卑)족들이 세운 북위(北魏)에서 처음 실시한 것으로서 국가에서 토지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반대급부로 세금과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였다. 수·당(隋唐) 등 선비족이 지배층을 형성했던 나라들에서 모두 균전제를 실시했다.
중종 때 훈구 세력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사림파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은 대토지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림파가 주장하는 지치(至治)는 결국 훈구 세력들이 갖고 있는 막대한 토지를 백성들에게 분배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당시 사림과 훈구의 대결은 토지를 둘러싼 사생결단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사림파는 자신들의 도덕성 실현에도 훈구 세력에 대한 비판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라는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행했다. 그랬기에 조광조 등이 훈구 세력의 역공세로 사형당했어도 많은 사대부는 물론 백성들까지도 사림파의 개혁 정치를 지지했다. 그래서 비록 조광조 등의 사림파는 현실 정치에서는 패배했지만 역사에서 승리하고, 그 후계자들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예들이 조광조 등의 개혁 정신을 실제로 계승했는지 여부는 다시 논의하더라도 사림파는 수단과 목적을 동일시했기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김기식 사태를 비롯해서 몇 차례 드러났던 현 정권의 인사 실패는 대통령이나 여당의 높은 지지도에 기대서 묻어 갈 일이 아니다. 수신제가에 실패한 사람들이 거듭 나타나고, 이들을 궁색한 논리로 계속 옹호할 경우 목적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의 당위성을 오십 보와 백 보 사이의 싸움으로 전락시키게 된다. 수단과 목적의 불일치가 목적 자체를 좌초시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성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인(聖人)이 되어야 하는데 그를 위한 학문이 대학(大學)이었다. 유학의 경전 중의 하나인 ‘대학’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모두 외웠던 것인데, 큰 학문의 길(大學之道:대학지도)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한다. 성인이 되는 큰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明明德:명명덕),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 있고(親民:친민), 지극한 착함에 머무는 데 있다(至善:지선)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치는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야 했다. 백성들의 경제적 삶이 풍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즘 말로 양극화가 없어야 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고대의 삼대(三代), 즉 하·은·주(夏殷周)를 이상 사회로 높인 것은 그 당시의 토지 제도가 정전제(井田制)였기 때문이다.
중종 때 사림파는 균전제(均田制) 실시도 주장했는데, 균전제란 고구려의 형제 민족이었던 북방 선비(鮮卑)족들이 세운 북위(北魏)에서 처음 실시한 것으로서 국가에서 토지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반대급부로 세금과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였다. 수·당(隋唐) 등 선비족이 지배층을 형성했던 나라들에서 모두 균전제를 실시했다.
중종 때 훈구 세력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사림파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은 대토지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림파가 주장하는 지치(至治)는 결국 훈구 세력들이 갖고 있는 막대한 토지를 백성들에게 분배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당시 사림과 훈구의 대결은 토지를 둘러싼 사생결단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사림파는 자신들의 도덕성 실현에도 훈구 세력에 대한 비판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라는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행했다. 그랬기에 조광조 등이 훈구 세력의 역공세로 사형당했어도 많은 사대부는 물론 백성들까지도 사림파의 개혁 정치를 지지했다. 그래서 비록 조광조 등의 사림파는 현실 정치에서는 패배했지만 역사에서 승리하고, 그 후계자들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예들이 조광조 등의 개혁 정신을 실제로 계승했는지 여부는 다시 논의하더라도 사림파는 수단과 목적을 동일시했기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김기식 사태를 비롯해서 몇 차례 드러났던 현 정권의 인사 실패는 대통령이나 여당의 높은 지지도에 기대서 묻어 갈 일이 아니다. 수신제가에 실패한 사람들이 거듭 나타나고, 이들을 궁색한 논리로 계속 옹호할 경우 목적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의 당위성을 오십 보와 백 보 사이의 싸움으로 전락시키게 된다. 수단과 목적의 불일치가 목적 자체를 좌초시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