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 교감] 흰눈세탁소
2018년 04월 24일(화) 00:00 가가
고향 고흥을 떠나온 지 반 백 년, 딱 오십년 세월이 흘렀다. 흙먼지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다섯 시간 길이었다. 빨강색 광주여객과 노란빛깔 금성여객이 화순 너릿재나 벌교 석거리재를 넘다가 숨이 가빠 엔진이 꺼지면 차장(운전기사와 함께 동승하여 차표나 요금을 받고 승객의 승하차를 돕는 안내원)의 안내로 승객들은 모두 내려서 버스를 밀어야했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서 시동이 걸리면 차장의 ‘오라잇’소리와 함께 짙은 매연을 뿜으며 출발했고, 승객들은 다시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너릿재 터널과 주암댐이 만들어지기 전이니 산 따라 계곡 따라 굽이가 심한 국도였다.
어느 여름 날 화순 탄광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는 화순 하면 탄광이 떠오를 정도로 유명했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복암에서 화순 경전선으로 연결된 탄광 전용 철로가 있었으니 당시 우리나라 대표적인 화순 탄광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신작로를 따라 나란히 석탄 운반용 화순선이 보이면 흙먼지가 점차 흑먼지로 변했다. 지붕이며 산야의 수목이 고요한 침묵으로 탄가루를 덮어쓰고 있었다. 쌀과 연탄만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한해를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던 생필품이었기에 이 칙칙한 진폐증의 원흉에게도 저항이 덜하던 시절이었다.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흰눈세탁소’였다.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씨의 세탁소 간판. 이 황량한 탄가루 거리에 있는 세탁소 이름이 ‘흰눈’이었다. 흰 눈이 오다가도 회색으로 물들어버릴 것만 같은 이 탄광촌에 흰눈세탁소가 있었다. 간판 모서리는 너풀거리고 하얀 글씨도 거의 회색처럼 변하여 바탕색에 가깝게 되었지만 흰눈세탁소의 이미지는 내 마음에 하얗게 새겨졌다.
누가 저 이름을 지었을까. 어떤 옷이든 맡기기만 하면 흰 눈처럼 깨끗하게 세탁해 주겠다는 주인의 의지일까, 간판장이의 묘수일까. 아니면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낸 역설의 표현일까. 나는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고 설렌다. 여러 홍보 글을 쓰고 캠페인 문구를 만들 때마다 이 ‘흰눈세탁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세탁소의 이름처럼 사람의 마음을 딱 한 번에 관통하는 문구를 만들어보지 못했다.
이제는 탄광의 거리인 화순 구암이나 복암을 지나지 않고 새로 뚫린 2차선의 곧은 아스팔트를 달리지만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습관적으로 내다본다. 젊은 시절 어느 무더운 날 차창으로 흑백영화처럼 지나간 흰눈세탁소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는 유명한 구두 골목이 있다. 신사들이 뽐내는 수제품 구두로 명성이 자자하고 명장들의 자부심도 가득한 골목이다. 골목의 간판도 ‘런던에서 최고의 구둣집’, ‘영국에서 제일 잘 만드는 집’,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두 가게’ 등 자존을 내건 이름이 즐비했다. 그런데 한 구둣집 간판은 ‘이 골목에서 가장 잘 만드는 집’이었다. 어느 르포 작가가 그 이유를 물으니 “런던의 구두 골목은 세계적인 명장이 모인 곳이다. 그러니 이 골목에서 구두를 가장 잘 만든다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만드는 것이다.”는 대답이었다. 손님에게 이 간판의 의미를 소개하면 신뢰가 두둑하게 쌓일 것 같고, 입소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 같다. 멀리 동방의 나에게까지 소문이 났으니 말이다.
이처럼 간판이나 이름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어느 다이어트 광고 플래카드의 문구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뼈만 빼놓고 다 빼 드립니다!” 광고 문구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 이름이 우산중학교이다. 예전에는 학교 이름을 지을 때 시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에 따라 지었다가 지금은 지역의 명칭이나 유래를 학교 이름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산중은 지역이나 행정 명칭과는 다른 곳에 있다. 31사단 근처 삼각산 밑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치동에 있다. 아주 뜬금없는 이름으로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실제로 우산동은 광주에 두 곳이나 있다. 북구 말바우 시장 근처 우산동과 광산구 하남지역에 우산동이 있다. 이렇다보니 학교를 찾아오는 분들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엊그제도 학교를 찾아온 분이 광산구 우산동까지 갔다가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왔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우산’이라는 명칭도 그렇지만 지리적인 위치와도 헷갈려서 학교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흰눈세탁소와 같은 좋은 이름이 없을까. 우산중 동문이나 지역 주민들께서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세탁소의 이름처럼 사람의 마음을 딱 한 번에 관통하는 문구를 만들어보지 못했다.
이제는 탄광의 거리인 화순 구암이나 복암을 지나지 않고 새로 뚫린 2차선의 곧은 아스팔트를 달리지만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습관적으로 내다본다. 젊은 시절 어느 무더운 날 차창으로 흑백영화처럼 지나간 흰눈세탁소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는 유명한 구두 골목이 있다. 신사들이 뽐내는 수제품 구두로 명성이 자자하고 명장들의 자부심도 가득한 골목이다. 골목의 간판도 ‘런던에서 최고의 구둣집’, ‘영국에서 제일 잘 만드는 집’,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두 가게’ 등 자존을 내건 이름이 즐비했다. 그런데 한 구둣집 간판은 ‘이 골목에서 가장 잘 만드는 집’이었다. 어느 르포 작가가 그 이유를 물으니 “런던의 구두 골목은 세계적인 명장이 모인 곳이다. 그러니 이 골목에서 구두를 가장 잘 만든다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만드는 것이다.”는 대답이었다. 손님에게 이 간판의 의미를 소개하면 신뢰가 두둑하게 쌓일 것 같고, 입소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 같다. 멀리 동방의 나에게까지 소문이 났으니 말이다.
이처럼 간판이나 이름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어느 다이어트 광고 플래카드의 문구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뼈만 빼놓고 다 빼 드립니다!” 광고 문구도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 이름이 우산중학교이다. 예전에는 학교 이름을 지을 때 시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에 따라 지었다가 지금은 지역의 명칭이나 유래를 학교 이름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산중은 지역이나 행정 명칭과는 다른 곳에 있다. 31사단 근처 삼각산 밑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치동에 있다. 아주 뜬금없는 이름으로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실제로 우산동은 광주에 두 곳이나 있다. 북구 말바우 시장 근처 우산동과 광산구 하남지역에 우산동이 있다. 이렇다보니 학교를 찾아오는 분들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엊그제도 학교를 찾아온 분이 광산구 우산동까지 갔다가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왔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우산’이라는 명칭도 그렇지만 지리적인 위치와도 헷갈려서 학교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흰눈세탁소와 같은 좋은 이름이 없을까. 우산중 동문이나 지역 주민들께서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