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30년 한빛원전 진단한다] ⑤ 지역실정 겉도는 방사능 방재대책
2017년 10월 11일(수) 00:00 가가
‘방사능 풍선’ 1시간 만에 28㎞ 이동 … 150만 광주 무방비
지난달 영광스포티움에서 열린 ‘2017한빛원전 방사능 방재 합동훈련’ 모습. 〈광주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4년 10월 20일 영광군 홍농읍 한빛원전 앞에서 지역 환경단체들로 구성된 ‘핵없는세상광주전남공동행동’은 이색 행사를 벌였다. 원전 앞에서 풍선을 날려 어디까지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당시 실험 결과, 풍선은 1시간 만에 28㎞를 날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단체는 실험결과를 토대로 정부와 광주시를 향해 ‘실효성 있는 방재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개정된 원자력 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 따라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기존 10㎞에서 30㎞ 반경으로 확대하고 형식적으로나마 방재대책을 수립하고 정기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 반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서 근소하게 떨어진 인구 150만 대도시 광주(원전과의 최단거리 35㎞)는 법으로 방재대책 수립을 강제하지 않고 예산 또한 지원되지 않는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원자력시설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대피나 소개를 위한 주민보호대책을 사전에 집중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설정하는 구역이다.
핵없는세상광주전남공동행동이 한빛원전 앞에서 ‘방사능풍선’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뒷짐지고 있다면, 한빛원전 사고시 직접 영향이 예상되는 광주와 전남, 전북이 공동으로 사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그에 걸맞은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인구 150만, 광주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밖 ‘정부는 뒷짐’= 현재 한빛원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원전 반경 28∼30㎞다. 영광군, 함평군, 장성군, 고창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광주는 한빛원전과 최단거리로는 35㎞, 최장거리(동구 지원동)는 60㎞.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기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 너무 비좁게 설정돼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정부분 확대됐지만 이 과정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발생했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는 법에 근거한 구호소 및 구호약품 확보, 대피계획 수립을 통해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이유로 구역을 폭넓게 설정하자는 의견이 많았고, 정부당국은 구역을 넓게 설정하면 예산은 예산대로 늘고 혼란만 되레 가중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 끝에 사실상 절충안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광주시의 경우 법에 따른 예산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원전 방재대책을 마련했으나,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 한 둘이 아니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시의회와 환경단체의 현실성 있는 원전 방재대책 수립요구에 따라 광주시가 지난 6월 정부(원자력안전위원회, 국민안전처, 총리실 등)에 공문을 보내 “한빛원전 중대사고에 대비한 모의실험을 국가차원에서 추진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역실정에 맞는 방재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했으나, 정부는 광주시의 요청을 거부했다. 원안위의 경우 “사고 발생시 변수가 워낙 많아 시뮬레이션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원전 전문가들은 “무책임하고 황당한 대응”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밖이어서 관련법에 근거한 예산지원과 훈련이 강제되지 않는 원전 인접 대도시에 원전 사고를 가정한 모의실험을 진행하거나 관련 예산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입장과도 배치되는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에 거주 중인 국민에게 “후쿠시마 원전 반경 80㎞ 이내를 벗어나라”고 대피권고를 내렸다. 일본 정부가 원전 반경 20㎞ 주민에게 대피권고를 내린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조치였으나, 미국과 영국이 자국민에게 취한 대피권고와는 동일한 수준이었다. 즉, 일본에서의 원전 사고시 반경 80㎞ 이상 대피하라는 권고를 내놓고도, 국내 원전에서의 사고 발생을 가정해 모의실험을 하고 그에 따른 방재대책을 세우려는 자치단체의 지원 요구를 묵살한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정부 뒷짐…광주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 세워야”= 광주시는 지난 2013년 광주시 방사능 방재대책(방사선 누출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을 수립한 이래 3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A4 용지 179쪽짜리 매뉴얼에는 방사선 비상단계별 대응조치, 위기관리 지휘체계, 방사선 비상단계별 대응조치 및 절차, 주민 소개 및 옥내 대피 등 주민보호조치, 구호소 운영, 오염구역 설정 및 통제, 오염 복구 조치, 교통통제 및 대시민 홍보 계획, 광주전남 협업 계획 등을 담았다.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광주시가 자체적으로 시민 안전 확보를 위해 만든 매뉴얼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광주시 방사능 방재대책 매뉴얼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허술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구호소와 관련해선, 한빛원전 방사능 위기상황 발생시 조선대에 41만명을 수용하고, 조선이공대는 14만7000명, 광주대 29만명, 송원대 9만5000명을 수용하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나 웃음거리가 됐다. 사고발생 지점의 풍향·풍속·누출된 방사선량을 고려하지 않고 관내 각 구호소 수용 인원을 3.3㎡당 3명으로 산정해 기계적으로 수립한 점을 이미옥 광주시의원이 지적하면 서다.
원전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다면 지방정부 격인 광주시라도 유사시 시민 안전 확보를 위해 방사능 방재대책을 면밀히 재수립해야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한빛 1호기부터 6호기까지 가동 원전 전체가 가동을 영구히 멈추고 사용후 핵연료까지 안전하게 처분될 때까지 최소 50년 이상 영광 한빛원전이 원자력시설로 남는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원전 전문가 일부는 한빛원전 사고를 상황별로 가정한 모의실험 후 실험 결과를 반영해 방재계획을 세우는 방안을 권고하기도 한다. 사고 종류별, 기상 상황별 모의실험을 한 후 대피 소요시간, 교통 정체구간 등을 파악한 후 우회도로 개설, 교통 통제 방법 개발 등 교통통제 시스템을 마련해야한다는 주문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피소 설치와 대피물자 배치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시민들 전체를 상대로 한 원전 방재 훈련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방재활동에 참여할 공무원, 경찰,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는 것도 유사시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도 광주시의 방재계획 점검 또는 재수립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우리나라 방사능 방재 정책 쟁점과 과제’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실제 대피령이 내려졌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가량은 “대피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해당 지자체를 통해 들었다고 답했다.
동일본 대지진(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 해일이 원전을 덮치면서 비롯됐다)으로 다수의 이동통신망이 통신불능상황에 빠진 ‘다중 재난’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마을의 방송장비와 차량을 이용한 가두방송이 사실상 유일한 것이었고, 이는 그대로 통계에서도 나타났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상당수 주민은 TV, 라디오, 인터넷보다 지자체의 피난 지시에 따라 대피지시 여부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원전 방재 전문가인 한병섭(원자력안전연구소장·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 박사는 “대피 필요성과 별개로, 원전에서 이전과는 다른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 자체만으로도 다수의 시민들은 당장 멀리 대피하려할 것”이라며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보다 대피 과정의 혼란에서 더 큰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한 박사는 “원전 재난뿐 아니라 공단 화학물질 사고, 테러 등 도시안전계획 수립차원에서 유사시 시민과 도시를 어떤 식으로 안전하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중앙정부가 뒷짐지고 있다면, 광주시 차원에서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핵없는세상광주전남공동행동이 한빛원전 앞에서 ‘방사능풍선’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뒷짐지고 있다면, 한빛원전 사고시 직접 영향이 예상되는 광주와 전남, 전북이 공동으로 사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그에 걸맞은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밖이어서 관련법에 근거한 예산지원과 훈련이 강제되지 않는 원전 인접 대도시에 원전 사고를 가정한 모의실험을 진행하거나 관련 예산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입장과도 배치되는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에 거주 중인 국민에게 “후쿠시마 원전 반경 80㎞ 이내를 벗어나라”고 대피권고를 내렸다. 일본 정부가 원전 반경 20㎞ 주민에게 대피권고를 내린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조치였으나, 미국과 영국이 자국민에게 취한 대피권고와는 동일한 수준이었다. 즉, 일본에서의 원전 사고시 반경 80㎞ 이상 대피하라는 권고를 내놓고도, 국내 원전에서의 사고 발생을 가정해 모의실험을 하고 그에 따른 방재대책을 세우려는 자치단체의 지원 요구를 묵살한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정부 뒷짐…광주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 세워야”= 광주시는 지난 2013년 광주시 방사능 방재대책(방사선 누출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을 수립한 이래 3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A4 용지 179쪽짜리 매뉴얼에는 방사선 비상단계별 대응조치, 위기관리 지휘체계, 방사선 비상단계별 대응조치 및 절차, 주민 소개 및 옥내 대피 등 주민보호조치, 구호소 운영, 오염구역 설정 및 통제, 오염 복구 조치, 교통통제 및 대시민 홍보 계획, 광주전남 협업 계획 등을 담았다.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광주시가 자체적으로 시민 안전 확보를 위해 만든 매뉴얼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광주시 방사능 방재대책 매뉴얼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허술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구호소와 관련해선, 한빛원전 방사능 위기상황 발생시 조선대에 41만명을 수용하고, 조선이공대는 14만7000명, 광주대 29만명, 송원대 9만5000명을 수용하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나 웃음거리가 됐다. 사고발생 지점의 풍향·풍속·누출된 방사선량을 고려하지 않고 관내 각 구호소 수용 인원을 3.3㎡당 3명으로 산정해 기계적으로 수립한 점을 이미옥 광주시의원이 지적하면 서다.
원전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다면 지방정부 격인 광주시라도 유사시 시민 안전 확보를 위해 방사능 방재대책을 면밀히 재수립해야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한빛 1호기부터 6호기까지 가동 원전 전체가 가동을 영구히 멈추고 사용후 핵연료까지 안전하게 처분될 때까지 최소 50년 이상 영광 한빛원전이 원자력시설로 남는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원전 전문가 일부는 한빛원전 사고를 상황별로 가정한 모의실험 후 실험 결과를 반영해 방재계획을 세우는 방안을 권고하기도 한다. 사고 종류별, 기상 상황별 모의실험을 한 후 대피 소요시간, 교통 정체구간 등을 파악한 후 우회도로 개설, 교통 통제 방법 개발 등 교통통제 시스템을 마련해야한다는 주문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피소 설치와 대피물자 배치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시민들 전체를 상대로 한 원전 방재 훈련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방재활동에 참여할 공무원, 경찰,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는 것도 유사시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도 광주시의 방재계획 점검 또는 재수립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우리나라 방사능 방재 정책 쟁점과 과제’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실제 대피령이 내려졌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가량은 “대피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해당 지자체를 통해 들었다고 답했다.
동일본 대지진(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 해일이 원전을 덮치면서 비롯됐다)으로 다수의 이동통신망이 통신불능상황에 빠진 ‘다중 재난’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마을의 방송장비와 차량을 이용한 가두방송이 사실상 유일한 것이었고, 이는 그대로 통계에서도 나타났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상당수 주민은 TV, 라디오, 인터넷보다 지자체의 피난 지시에 따라 대피지시 여부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원전 방재 전문가인 한병섭(원자력안전연구소장·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 박사는 “대피 필요성과 별개로, 원전에서 이전과는 다른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 자체만으로도 다수의 시민들은 당장 멀리 대피하려할 것”이라며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보다 대피 과정의 혼란에서 더 큰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한 박사는 “원전 재난뿐 아니라 공단 화학물질 사고, 테러 등 도시안전계획 수립차원에서 유사시 시민과 도시를 어떤 식으로 안전하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중앙정부가 뒷짐지고 있다면, 광주시 차원에서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