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
2017년 02월 27일(월) 00:00 가가
[정봉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도서관 공사 중이다. 냉난방기, 화장실, LED램프, 보일러 배관 따위의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손본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개선을 위해 시간을 아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일정을 잡고 보니 봄방학. 그래도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깨끗하게 단장하고 아이들을 맞이하려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도서관 문을 닫는다고 알리고 도서 반납 기간도 연장하고 다시 만나자 약속했지만 “그럼 우리는 도서관 못 와요?”라고 묻는 눈망울을 마주하면 정말 미안해졌다. 날마다 제집처럼 드나들던 도서관에 한동안 못 온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본격 공사에 들어가 먼지와 추위와 싸우며 짐을 들어내느라 정신없는데 아이들은 자꾸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대체 도서관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다. 나도 처음 보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기계 속에는 어마어마한 공정이 숨어 있음을. 수많은 선들이 바닥과 머리 위로 흘러다니고 배관으로 나온 선들이 높다란 천장에서 주룩주룩 내려와 있는 모습은 마치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지금은 들어오면 안 돼. 봐, 위험하겠지? 여기 ‘임시 휴관’이라고 써있는데 못 봤어?”하니까 아이가 되물었다. “근데, 휴관이 뭐예요?” 아차! 어린 아이들에게 ‘휴관’이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한 빨간 글씨였구나.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써 놓았어야 했어! 버릇처럼 쓰니까 익숙해져서 아이들의 언어로 다가가지 못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허를 찔러 준 아이의 ‘질문’이 참으로 고마웠다. 인간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질문은 자기 주관을 갖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적극적인 태도다. 질문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서 그 자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은 왜 어른들 맘대로 하나요? 케이크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벌은 벌에 쏘일 수 있나요? 전쟁은 왜 하나요? 제일 처음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좋은 것은 어디서 오나요?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는 왜 더 천천히 가나요? 숫자는 영원히 계속 커지나요? 단 것은 몸에 나쁜가요? 신은 누구인가요? 나라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요? 소가 1년 내내 방귀를 한 번도 뀌지 않고 모았다가 한 번에 크게 터뜨리면 우주로 날아갈 수 있나요?”
‘어른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 가운데 몇 가지 예다. 그야말로 흥미롭고 재미있고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철학적 난제의 중심을 건드리는 촌철살인의 질문을 들고 훅 들어온다.
위 질문의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다. 거시기 머시기 횡설수설하다가 화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진땀 빼지 않고, 질문하면 죽는다고 협박하지 않으면서, 진정성 있는 아이들의 질문에 지혜롭고 친절하게 답해 줄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세상에 없었던 생각과 관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차원을 열어 보여 주는 상상력의 대가들인 아이들은 쓰잘 데 없어 보이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을 품고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존재는 동물, 질문이 있는 척하는 존재는 속물, 질문을 할 수 없는 자들은 유령, 질문을 파괴하는 자들은 괴물”(엄기호의 ‘단속사회’/창비)이라고 했다. 인간, 동물, 속물, 유령, 괴물은 존재나 유형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요소라고 했다. 관계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속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된다. 이를 연결 짓는 요소는 질문이다.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광화문 현판에 내걸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글귀를 기억한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질문의 책)에서 인용된 그 한 줄은 피곤에 찌들고 시키는 대로 일하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정신의 우물가로 데려가 우리가 사유하는 인간임을 일깨우는 찬물 한 사발을 건네주었다. 좋은 질문은 그대로 예술이다.
어른들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 나였던 그 아이가 던지는 질문을 마주하게 될 때, 비로소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경청하고 환대하고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이야말로 우리를 한없는 신선함 속에 벙글거리게 하는 귀중한 보배다.
일정을 잡고 보니 봄방학. 그래도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깨끗하게 단장하고 아이들을 맞이하려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도서관 문을 닫는다고 알리고 도서 반납 기간도 연장하고 다시 만나자 약속했지만 “그럼 우리는 도서관 못 와요?”라고 묻는 눈망울을 마주하면 정말 미안해졌다. 날마다 제집처럼 드나들던 도서관에 한동안 못 온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지금은 들어오면 안 돼. 봐, 위험하겠지? 여기 ‘임시 휴관’이라고 써있는데 못 봤어?”하니까 아이가 되물었다. “근데, 휴관이 뭐예요?” 아차! 어린 아이들에게 ‘휴관’이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한 빨간 글씨였구나.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써 놓았어야 했어! 버릇처럼 쓰니까 익숙해져서 아이들의 언어로 다가가지 못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허를 찔러 준 아이의 ‘질문’이 참으로 고마웠다. 인간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질문은 자기 주관을 갖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적극적인 태도다. 질문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로서 그 자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위 질문의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답할 자신이 없다. 거시기 머시기 횡설수설하다가 화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진땀 빼지 않고, 질문하면 죽는다고 협박하지 않으면서, 진정성 있는 아이들의 질문에 지혜롭고 친절하게 답해 줄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세상에 없었던 생각과 관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차원을 열어 보여 주는 상상력의 대가들인 아이들은 쓰잘 데 없어 보이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을 품고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존재는 동물, 질문이 있는 척하는 존재는 속물, 질문을 할 수 없는 자들은 유령, 질문을 파괴하는 자들은 괴물”(엄기호의 ‘단속사회’/창비)이라고 했다. 인간, 동물, 속물, 유령, 괴물은 존재나 유형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요소라고 했다. 관계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속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된다. 이를 연결 짓는 요소는 질문이다.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광화문 현판에 내걸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글귀를 기억한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질문의 책)에서 인용된 그 한 줄은 피곤에 찌들고 시키는 대로 일하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정신의 우물가로 데려가 우리가 사유하는 인간임을 일깨우는 찬물 한 사발을 건네주었다. 좋은 질문은 그대로 예술이다.
어른들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 나였던 그 아이가 던지는 질문을 마주하게 될 때, 비로소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경청하고 환대하고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이야말로 우리를 한없는 신선함 속에 벙글거리게 하는 귀중한 보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