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사진작가 “긴 세월 버텨온 오월 어머니들 ‘현재’ 담았죠”
2025년 04월 20일(일) 19:50
오월 어머니들 앵글에 담은 조선희 사진작가
극적인 모습 대신 자연스러움 역사에 선명하게 기록
‘오월’ 비관련자도 촬영…“연대의 표명·기억의 시각화”

조선희 사진작가는 최근 광주를 찾아 오월 어머니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조선희 작가 제공>

“엄마, 표정 너무 좋다. 오월 그날을 한 번 떠올려 볼까요. 엄마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요. 오늘 참 좋은 날이예요. 한 번 웃어보세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조선희(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사진작가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며 어머니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차려 입은 오월 어머니들은 정면으로 카페라를 응시하며 촬영장의 주인공이 됐다. 조 작가는 어머니들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자세를 잡아주며 그들을 앵글에 담았다. 조 작가가 포착한 모니터 속 어머니들의 눈빛은 촉촉했고, 입가에 띤 엷은 미소는 아름다웠다.

연예인 등 인물 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조선희 작가가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스탭, 메이크업아티스트 등과 함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대나무 정원에서 오월 어머니들을 촬영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전일빌딩 245에서 어머니들과 첫 만남을 가진 후 이번 촬영을 준비해 왔다. 촬영은 사복과 한복을 입은 모습 두 가지 버전으로 진행됐다.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있는 그대로 정면을 응시하는 방식으로 촬영했습니다. 이게 가장 깊은 존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픈 역사지만 모두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 이 과정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견뎌온 얼굴을 찍으려했고 했어요. 옆집 할머니, 이모, 엄마라는 느낌으로 촬영했습니다. 엄마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은, 긴 시간 버텨온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가능한 거예요. 그 어떤 연기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진실된 삶의 모습이죠.”

조 작가는 어머니들의 ‘현재’ 모습에 방점을 찍었다. 그래서 허리 시술을 하고 난 후 회복중인 어머니의 경우 보조 기구를 차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이날 촬영 현장에서는 조 작가와 30여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온 홍현정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함께 해 어머니들의 화장을 책임졌다. 이효리 등 연예인들을 담당했던 그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도록 메이크업을 했다고 말했다.

조 작가의 작업은 확장중이다. 이번 인물 사진 촬영과 함께 어머니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집에서 한 차례 더 촬영하고, 어머니들이 소중히 여기는 오브제들까지 앵글에 담을 예정이다. “엄마, 나 엄마 집에 놀러갈 거야”라는 조작가의 말에, 한 어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자고가라”고 화답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힘줘서 기억하는 것도 있고, 무겁지 않게 여백을 주며 스스로 질문을 하게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번 어머니들의 촬영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이 역사의 기억을 선명하게 하는 데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도 계신데, 이런 일들은 더 서둘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구 출신으로 1990년대 대학에 들어가서야 5·18을 비롯한 왜곡된 역사에 눈을 뜨게 됐다는 그는 이번 촬영 과정에서 오월 관련자가 아닌 ‘비 당사자의 초상’도 촬영했다. 오월 관계자들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왔고, 그들의 기억을 지지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어머니들과 똑같은 한복을 입고 촬영에 임했다.

조 작가는 “오월 관계자 이외의 사진을 찍는 것은 잊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 표명이자, 개인의 기록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기억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