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끝나지 않을 막장 드라마 같던 선거도 막을 내리고,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국민 드라마 ‘태양의 후예’도 오늘 드디어 막을 내린다. 태양의 후예는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남긴 것만으로도 돌아보고 싶어지는데, 이에 비해 선거 과정은 별로 돌아보기조차 싫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선거가 국민 드라마가 되는 날도 있으련만 말이다.

태양의 후예는 가히 카타르시스였다. 짠하고 달달한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이야기였고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였고, 동료애에 대한 이야기였고, 의리에 대한 이야기였고, 무엇보다도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드라마가 초반부터 뜨고 군인의 이야기에 파병 이야기에 태극기에 대한 경례 장면이 나오니 그랬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드라마를 칭송하는 오버까지 해서 뜨악하게 만들었지만, ‘태양의 후예’는 갈수록 박근혜정부의 국가관 또는 역량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드라마에서는 주옥같은 명언들과 그에 합당한 행동들이 쏟아졌다. ‘국민을 살리는 게 최고의 의무로 알고 있는 군인’은 재난 상황에서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사람까지 구하느라 목숨 걸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민을 살리지 않는 조국은 나의 조국이 아니다’라며 특전사는 위험의 구렁텅이에 자신을 던졌고, 특전사령관은 자신의 직을 걸고 부하의 행위를 보호했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은 시청자들이 있을까? 과연 국가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던 걸까?

적어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임을 정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온 장면은 가히 판타지 드라마다웠다. 성공한 작전에 어떻게 책임을 묻느냐,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의 책임일 뿐이라며 ‘인질을 구해 줘서 고맙다, 아무도 안 다치고 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며 특전사령관에게 90도로 절하는 대통령의 존재, 우리는 잊고 있었던 존재였다. 과연 대통령은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것이라 믿어야 하건만 우리 머릿속에 있는 현재의 대통령이 그런 존재일까? 이 장면에 어울리는 대통령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며 SNS가 뜨거워졌었다. 이런 장면은 판타지이기만 해야 했을까?

안타깝게도 ‘태양의 후예’는 판타지다. 명예와 책임과 의리와 원칙과 상식이 살아 있는 판타지 말이다.

현실에서는 어떤 막장 드라마가 펼쳐졌던가? 선거구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분열했고, 그 분열을 포장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거짓 논리들이 판쳤을 뿐 아니라, 여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그 분열이 계속되지 않을까 봐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를 응원하는 코미디까지 펼쳤다. 분열은 필패임이 속속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통합도 연대도 없었을 뿐이다. 그것은 깨어 있는 국민의 몫일 뿐이었다. 당을 바꿔 나온 대부분의 현역 의원들이 다시 공천을 받고 호남에서 현역 프리미엄을 누렸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복수극이라 할 만한 공천 학살이 버젓이 자행되었다. 오만한 공천 학살이라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지나면 그뿐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번 총선은 최근 총선 중 가장 흔쾌하지 않은 총선이었다. 정책이 완전히 사라진 총선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총선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선거였다. 이 막장 드라마가 진행될 때 국민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하마터면 박근혜정부의 모든 잘못들이 덮어질 뻔했다.

그렇다. 현실은 판타지 드라마가 아니다. 원칙과 상식과 책임과 명예 대신에 변칙과 비상식과 무책임과 불명예가 대세다.

하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온전히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국민이 드라마를 만든다. 오늘 이후의 현실 속 드라마는 어떻게 펼쳐질까? 분명한 것은 현실에서의 이상 실현을 판타지라고 버려둘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 이상은 판타지 드라마에서만 펼쳐져야 하는가? 우리도 국민을 살릴 조국을 가질 자격이 있다.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