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6월 26일 육군 소위 안두희는 경교장을 찾아가 백범 김구를 저격했다. 그간 누가 안두희를 사주해 백범을 암살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들이 있어 왔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누가 사주했는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시점에서 왜 백범을 암살했는가라는 점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듬해 치러질 제2대 총선에 백범이 이끄는 한독당, 즉 한국독립당이 참여하기로 비밀리에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은 중요하다. 백범 암살이 가져올 숱한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암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택한 배경이 1950년의 제2대 총선이라는 새로운 견해다. 만약 백범이 이끄는 한독당이 당론으로 총선에 참여한다면 정치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혁명가나 통일운동가로서는 모르겠지만 백범이 1948년 5월 10일 치러졌던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불참한 것은 정치가로서는 악수였다. 200명을 뽑는 제헌국회 선거에서 이승만이 이끄는 대한독립촉성중앙회는 177만5000여 표로 26.1%를 득표하면서 55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고, 미 군정 내내 사실상 여당이었던 한민당은 91만6000여 표로 13.5%를 득표하면서 29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대한독립촉성중앙회와 한민당을 합쳐도 39.6%에 불과했다.

그럼 제헌국회의원 선거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무소속이었다. 무소속은 274만5000여 표로 40.3%를 득표하면서 85명을 당선시켰다. 이때 당선된 무소속 중에는 개인 자격으로 출마한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출마한 독립운동가 출신들에게 대거 표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김구가 이끄는 한독당이 제헌국회 선거에 참여했다면 1당이 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그래서 한독당의 제2대 총선 참여는 이승만 등의 집권 세력에게 악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동아일보’ 1949년 8월 10일 자가 ‘안두희 사건 계기로 한독당 탈당자 속출’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백범 암살은 한독당의 집권을 무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1950년 5월 30일의 제2대 총선에서 큰 이변이 발생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독립촉성중앙회를 비롯한 보수정당들이 모두 참패한 것이다. 제2대 총선은 210석으로 10석이 늘어났는데 대한독립촉성중앙회는 55석에서 14석으로 대폭 줄었다. 한민당과 여러 보수정당들의 연합체였던 민주국민당은 69석에서 24석으로 대패했다.

사실상 집권당이었던 대한독립촉성중앙회가 얻은 득표수 47만3000여 표는 득표율 6.8%였다.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당이 6.8%를 득표했다는 것은 전 세계 선거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민주국민당도 마찬가지여서 68만3000여 표로 9.8%에 불과했다.

제2대 총선에서도 승자는 무소속이었다. 무소속 중에 한독당 출신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유권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시정(施政) 2년을 표로써 준엄하게 심판하면서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민족정기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소속에 표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제헌국회 선거 때는 유권자들이 무소속을 선택하는 것으로써 미 군정 때의 여당이었던 한민당을 탄핵했다면, 제2대 총선에서는 역시 무소속을 선택하는 것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의 시정 2년을 심판했던 것이다.

우리는 교육 정도가 낮았던 당시 유권자들이 지금보다 정치 수준이 낮았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하지만 이는 큰 착각에 불과하다. 유권자들이 만든 이런 정치 지형이 불과 한 달 후 북한이 남침하면서 크게 왜곡되었을 뿐이다. 외세에 의한 분단이 민족상잔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모든 정치 상황을 압도하는 한국 정치의 특수성이 괴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지역감정 조장은 물론 ‘종북’이니, 운동권이니 하는 작금의 색깔론도 모두 이 분단 체제에 기생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이번 총선의 유권자들은 60여 년 전의 유권자들처럼 지난 집권 과정을 평가하고 미래의 주도 세력을 선택하는 현명한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이번 총선이 그런 정상적인 선거로 가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며칠 후면 곧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