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더민주)과 국민의당이 진검승부를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 지역 유권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호남에서 야권이 양분된 것은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새천년민주당이 맞선 지 12년 만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사활을 걸고 호남에서 맞붙게 됨에 따라 유권자들은 제대로 ‘대접’받게 됐지만,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머리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화끈한 판’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선 더민주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탓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전 대표 시절 최고조에 이른 당 내분 끝에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뛰쳐나온 게 지난해 12월 13일. 이에 앞서 천정배-박주선-박준영 등 호남 출신 신당파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당내 비주류의 반발도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였다. 해결책으로 문 전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요지부동이던 문 전 대표는 분당 사태 후인 올 1월 27일에야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안철수는 당 밖으로 나갔고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과 김한길 의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독자 신당을 추진하던 천정배·박주선 의원도 합류했다. 문 전 대표의 망설임의 꼬리가 길어지는 바람에 ‘호남 양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더민주는 국민의당에 의해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당이 출현하자 문 전 대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에게 바통을 넘겼고 새로운 피들을 수혈했다. 결국 국민의당은 ‘큰 메기’ 역할을 하며 더민주를 깊은 잠에서 깨워 준 형국이 된 것이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열을 정비한 더민주는 ‘안방 수습’에 나섰다. 광주여상 출신의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화순), 오기형 중국통상 전문 변호사(〃), 김병관 웹젠 의장(정읍),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등 호남 연고의 신진 인사들을 잇따라 영입했다. 최재성·노영민 등 이른바 일부 ‘친노’는 일단 2선으로 물러나거나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당도 호남 인사들로 골격을 갖추고 배수진을 쳤다. 안철수 의원과 함께 천정배 의원을 공동대표로 추대하고 박주선·주승용(원내대표) 최고위원을 선임했다. 장병완 정책위의장, 황주홍 전국위원회 농어민위원장, 임내현 법률위원장에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윤리위원회 위원장 겸 공직후보자격심사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호남에 대한 뜨거운 구애와 함께 ‘야당 적자’ 싸움도 불꽃을 튀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 있을까. 참신한 인재 영입과 민생, 그리고 정치 혁신? 귀에 닳은 원칙론은 이젠 너무 많이 들어 물릴 정도다. 차라리 누가 호남을 대변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양당(兩黨) 중 어느 쪽이 호남의 대변자가 될 수 있는지 뜯어보자. 우선 더민주는 ‘진정성’을 확인받아야 한다. 최근 만난 광주의 한 유권자는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 핵심이 발을 뺀 것은 ‘위장 후퇴’가 아니냐”며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호남 지지를 기반으로 총선에서 성과를 거둔 후 문 전 대표와 복심들이 전면에 부상할지 모를 일이라며 미심쩍어 했다. 이렇게 되면 지역 인사들은 다시 들러리로 전락하고 결국 ‘친노당 ’으로 원상복귀하게 될 것이라는 의심을 쉽사리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더민주는 뼛속까지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신뢰 구축이 우선이다.

국민의당에 대해서도 경계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창당과 선거 준비 과정에서 호남 출신들을 얼굴로 내세웠다가 나중에 바로 ‘팽’(烹) 시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호남 출신이 공천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선거 후 당내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려난다면 지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다. 총선 후에도 호남 정치인들을 중용하고 광주·전남·북을 위해 나서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 달라는 요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누가 호남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지역 유권자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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