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에 글을 쓰니까 나를 광주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특히 SNS에서는 새삼 발견했다는 듯이 친근감을 표시하신다. 그때마다 해명하기도 뭐해서 대충 넘긴다. 친근하게 여기시면 그 자체로 좋은 것 아닌가?

나는 이른바 색깔 없는 수도권 출신이다. 지역 색깔이 확연했더라면 정치 활동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지지는 물론이거니와 의지할 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살고 아무리 지역 의식이 희석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역에서 올라오는 여론이 만만찮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무언가 같이 나눌 것을 찾게 마련이니 동향이라면 관계를 맺기 수월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단지 동향이라 해서 무조건 지지할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동향 내에서도 수많은 분화가 일어나는 지금, 도대체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보통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다. 대승적 선택과 전략적 선택을 능수능란하게 해 온 것으로 유명한 호남도 작금의 대분열 상황은 이전에 목격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쪼개져 있거니와 게다가 대표 격인 호남 정치인들이 각기 새로운 당을 추진하는 형국이니, 도대체 호남이 이렇게까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지역에 계신 분들 이상으로 수도권의 호남인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신다. 토론을 하다 못 해 뜨거운 논쟁을 전개하다가 거의 싸움 직전까지로 치닫는 망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혼란스러울 때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는 선택의 시점을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선택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장 지지를 표명하고, 반대를 표명하고, 설전에 섞여 들어가기 보다는 숨을 골라 보는 것이다. 설마 이 대분열이 계속될 수는 없을 터이다. 가닥이 잡히고 틀이 잡힐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호남 정치인들이 설마 가닥을 잡지 못한 채 헤매기만 하겠는가?

궁극적인 선택권을 가진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선택의 기준을 다잡아 본다. 그 선택의 기준은 세 가지일 것이다. 첫째, 될성부른가? 둘째, 한결같은가? 셋째, 해낼 것인가? 미래와 과거와 현재(근미래)에 대한 판단이다.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얼마나 미래지향적인가, 그 미래를 이룰 의지가 있는가, 능력은 있는가, 힘을 키우고 있는가, 스스로 세운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가,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가, 약속을 중시하는가, 누구를 위한 약속인가, 궁극적으로 정치의 영혼이 담겨 있는가?

정치적 지지에 있어서 언제나 사람 이상으로 조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 한 사람에 대한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이 같이 하는 세력에 대한 판단은 정치적 지지에서 가장 중요한 준거나 기준이 될 것이다. 정치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시간이다. 도대체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더니 합의문조차 없는 위안부 졸속 합의에 이어 북핵 문제는 중국에게 풀어달라고 하고, 경제는 국민이 풀어달라며 대통령이 거리로 나가 서명 운동에 나서는 지경이다.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일도 하겠다는 기세가 등등하다. 여당은 벌써부터 국회선진화법을 폐기시키겠다며 변칙적인 추진을 하면서 180석 이상을 얻겠다고 기세등등한 판국이다.

대분열의 형국으로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누구도 안다. 그럼에도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쓰라리지만, 이윽고 기다려 보기로 한다. 어느 개인의 자리 보전이나 어느 특정 세력의 힘 유지가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승적인 동력이 대세로 자리하기를 진심으로 기다린다.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또 믿어 본다.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