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연말연시나 명절 때 인천 공항을 이용하는 출국자 수가 역대 최다라는 보도를 계속 보고 있다. 2015년의 경우 설 연휴 기간 인천공항 이용 승객은 78만6000명, 추석 연휴 기간에는 닷새 동안 70만 명, 크리스마스에는 8만 2천여 명으로 모두 역대 최다라는 말이 앞에 붙고 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친구·연인들이 연휴를 즐기는 경우도 많지만 ‘나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다. 또한 국내의 알려진 여행지는 주말과 휴가철이면 어딜 가나 북적인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고, 연차수당을 줄이기 위해 연말에 남은 휴가를 모두 쓰도록 권장하는 기업의 정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여행 초창기부터 죽 관찰해 온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더 깊은 원인이 있다. 강의하면서 만나는 젊은이들, 이웃 블로거들을 보면 앞날이 불투명하고 막막한데도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1년·2년씩 세계 일주를 떠나거나 몇 달씩 장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주말마다 국내 여행하며 사진 찍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왜 그럴까?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지친 것이 아닐까? 알베르 카뮈가 시시포스(Sisyphos)의 신화에서 말했듯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가족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 왔는데 그 끝이 어딜까라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300∼400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 사회를 우리는 30∼40년 만에 이룩하느라 엄청나게 땀 흘렸고 수많은 부작용을 거쳤다. 고생하고 나면 안정되고 편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 왔다. 그런데 웬걸, 산 넘어 산이요 강 건너 강이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예기했듯이 획일적인 가치, 이데올로기들이 붕괴되면서 모든 가치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치의 다신교’ 현상, 확고한 정체성이 무너지고 이성보다 감정이 난무하며, 인터넷·SNS가 휩쓰는 혼란스런 탈근대 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새로운 사회의 모델은 쉽게 보이지 않고,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불안한 노후 문제, 고령화, 다문화 문제 등 수많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게 금방 쉽게 해결될 문제인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힘들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숨통을 트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해외나 국내 여행지에 가서 잠시 세상을 잊는다. 그런데 종종 돌아온 여행자들은 가슴앓이를 많이 한다. 여행하던 시간은 달콤하지만 다시 펼쳐지는 현실은 쓰기 때문이다. 늘 여행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여행을 마치고 온다고 마냥 행복한 삶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살기 위해서는 땀 흘려야 하니 삶은 윤회처럼 되풀이된다. 그 상황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그동안 돌아온 여행자들에게 마음을 다지고 땀 흘리며 ‘역동적 뿌리’를 내리자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역동적 뿌리 내리기란 뿌리를 내리되 다시 떠나는 꿈을 꾸는 것을 말한다. 머묾과 떠남이 공존해야만 삶에 활기가 생긴다. 여행은 단순히 사치스러운 소모적 행위가 아니라 각박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삶의 기운을 불러내는 역동적 행위다.

예전에 어떤 외국의 조사에서 보니 성공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유롭게 여행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성공할수록 시간이 없어지고 관계가 복잡해진다.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므로 어느 지점에서 잠깐 멈추고, 틈을 내서 여행하는 행위는 결단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나는 종종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일상이 즐거운 세상을 상상해 본다. 혹시, 당신은 여행을 별로 떠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건 살 만하다는 얘기다. 그만큼 이웃과 고향이 좋고 각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냥 여행을 부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여행을 떠나든 현실에서 묵묵히 살아가든, 자신이 만족스럽다면 바로 그곳, 그 시간이야말로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