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위기 상황이다. 성장 동력이 꺼져가고 있다. 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조선과 선박 및 건설업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그뿐인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부감사 기업의 10%가 한계기업인 상황이다. 빚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기업들이 망가지고 있는 걸까. 원인은 많다. 한데 정부는 그것을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진단이 잘못됐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노조가 강성이어서도, 노동 유연성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외려 노동 유연성을 강화시키고 노동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 환경은 어떤 상황일까. 정부 여당의 주장대로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면 한국의 노동 안정성은 상당한 수준에 있어야 한다. 한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의 노동 안정성은 최악이다. 고용 안전성, 노동 시간, 소득 분배 등 각종 노동지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속기간의 경우 평균 5.6년에 불과해 통계가 발표되는 OECD 25개국 중 가장 짧았다. 임시직 근로자 비중도 21.7%에 달해 OECD 29개국 중 5위에 올랐다. 연간 노동시간도 OECD 국가들보다 길었다. 근로자의 은퇴 시기도 긴 편에 속했다. 분배지표는 OECD 회원국 중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 다음으로 열악했다. 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23.9%로 이 역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한마디로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살아날 리 없다. 노동 환경이 열악한데 소비가 늘어날 수 없다. 불안한 일자리에서 저임금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장이 가능할 리 없다.

좋다. 기업의 목표가 ‘이익 극대화’에 있는 만큼 최대한 비용을 낮추려 애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치다. 신자유주의 물결을 등에 업고 기업은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계약직을 파견으로, 파견을 하청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조직에서 노동자를 떼어 버리고 있다. 이는 코미디다.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기업을 기업이라 할 수는 없다. 정의롭지 않다.

위의 통계에서 미국은 불평등 지표와 저임금 근로자 비중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의 불평등이 이처럼 심화된 배경에는 ‘이익극대화’가 기업의 지상 목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기업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노동자를 떼어 버렸다. 그 과실은 극소수의 투자자와 경영진에게만 집중됐다. 반대로 노동 현장에서 배제된 보통 사람들은 가난으로 내몰렸다.

한데 한국이 이 길로 가고 있다. 노동 안정성이 최악이란 얘기는 노동 유연성이 극대화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와 여당은 ‘노동 개혁’이란 명분 아래 저성과자 해고 요건을 명확히 하고 취업 규칙을 노동자 과반 동의 없이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더 악화된 노동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하나,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노동 유연성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이다. OECD 통계가 말해 주고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주주 이익 극대화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은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갖고 있는 유기체이다.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주주만이 아니다. 노동자, 관계회사, 지역사회, 국가 에너지의 총합이다. 때문에 기업은 특정 주주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필요는 있다. 기업이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단, 그것이 불안정하면서도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거라면, 기업이란 권력이 사회 계층 구조의 최상의 위치에 있도록 하는 거라면, 무엇보다 대주주만의 이익을 위한 거라면, 대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군가 노동자를 떼어 버리려 하는 기업을 견제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는 부의 집중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새로운 해가 밝았다. 무너지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 동시에 추락하는 서민층과 노동자도 살려 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노동 유연성이 아닌 안정성의 강화에 있다. 그래야만 경제가 산다.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