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주의 ‘인권 광장’]술 권하는 사회, 빚 권하는 사회
2015년 11월 13일(금) 00:00 가가
-광주복지재단 출범에 부쳐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술이나 먹을 수 있나….”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입니다. 일본 식민지하 우리나라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015년 오늘은 어떨까요? ‘빚 권하는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저축률은 23.2%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빚이 일상화 됐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출을 해 주겠다’, ‘전화 한 통만 하면 몇 백만 원씩 그냥 주겠다’는 광고로 가득합니다. 이런 광고가 얼마나 친근한지, 어린아이들이 대부업체 CM송을 동요처럼 흥얼거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한 세대 사이에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는 걸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50만명 정도가 파산신청을 하는데 그 중 90%가 실직·의료·가족해체 등으로 빚을 졌기 때문이랍니다. 게으름이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어려워진 경기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지 못했고, 까다로운 은행의 계약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미국의 은행들은 규제완화로 금리 한도가 사실상 없어지면서 빚을 갚을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에게 높은 금리로 대출해서 이윤을 늘려갔습니다. 사람들이 파산신청을 해도 신용카드 수수료와 이자가 높기 때문에 은행은 결국 많은 이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은행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계속 대출을 장려하고 권합니다.
우리나라도 ‘빚 권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은행이나 대부업체의 곳간엔 돈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청년들이 새롭게 빚을 지고, 전세난과 월세 상승으로 집을 사서 대출 갚느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운 하우스푸어가 250만 가구나 됐습니다. 장기연체자가 350만명입니다.
가계부채는 나날이 늘어 1200조 원에 이르렀고 그중 절반이 ‘생계형 대출’입니다. 기존 대출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에 빠진 거지요.
해외 주요 언론들은 금융 위기 당시의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상위 계층도 80% 이상이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빚의 노예로 전락한 ‘빚 공화국’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소비하라는, 부채 주도 성장정책을 유지해 왔습니다. 복지로 풀어야 할 저소득층 문제를 방치하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빚의 악순환으로 더욱 깊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러한 부채 중심의 성장 구조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광주의 경우는 어떨까요? 광주시 평균인 연 3121만원보다 소득이 낮고 다세대/단독 주택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자살 발생이 많았습니다. 광주지방경찰청 자살 사고 자료를 보니, 자살의 원인으로는 정신 문제(특히 우울증)가 28%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경제 문제로 22%인데, 부채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나이스 평가정보에 90일 이상 연체정보 보유 비율이 높은 자치구 순으로 자살시도한 사람의 수가 많았습니다. ‘경제적 자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광주시는 ‘학교 밖 청소년, 비정규직, 이주민, 교통 약자, 빈곤, 자살’ 문제 등을 6대 핵심 인권영역으로 선정했습니다.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의 정신질환 뿐 아니라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 즉 빈곤과 같은 근본적인 원인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빈곤-카드연체-대출-빈곤’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나야 자살률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자살 공화국’의 다른 말은 곧 ‘빚 공화국’입니다.
빚 때문에 동반자살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습니다. 빚은 우리 모두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됐습니다.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 걸까요? 과도한 빚을 권하는 행위가 법과 제도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빚을 온전히 개인 책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의식으로 서울·성남 등 여러 곳에서 시민들의 빚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광주복지재단’도 시민들의 빚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다뤄주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빚을 지게 되는 취약 계층, 더 나아가 서민과 중산층에게 빚과 재무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소중한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저축률은 23.2%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한 세대 사이에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는 걸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50만명 정도가 파산신청을 하는데 그 중 90%가 실직·의료·가족해체 등으로 빚을 졌기 때문이랍니다. 게으름이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어려워진 경기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지 못했고, 까다로운 은행의 계약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청년들이 새롭게 빚을 지고, 전세난과 월세 상승으로 집을 사서 대출 갚느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운 하우스푸어가 250만 가구나 됐습니다. 장기연체자가 350만명입니다.
가계부채는 나날이 늘어 1200조 원에 이르렀고 그중 절반이 ‘생계형 대출’입니다. 기존 대출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에 빠진 거지요.
해외 주요 언론들은 금융 위기 당시의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상위 계층도 80% 이상이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빚의 노예로 전락한 ‘빚 공화국’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소비하라는, 부채 주도 성장정책을 유지해 왔습니다. 복지로 풀어야 할 저소득층 문제를 방치하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빚의 악순환으로 더욱 깊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러한 부채 중심의 성장 구조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광주의 경우는 어떨까요? 광주시 평균인 연 3121만원보다 소득이 낮고 다세대/단독 주택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자살 발생이 많았습니다. 광주지방경찰청 자살 사고 자료를 보니, 자살의 원인으로는 정신 문제(특히 우울증)가 28%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경제 문제로 22%인데, 부채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나이스 평가정보에 90일 이상 연체정보 보유 비율이 높은 자치구 순으로 자살시도한 사람의 수가 많았습니다. ‘경제적 자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광주시는 ‘학교 밖 청소년, 비정규직, 이주민, 교통 약자, 빈곤, 자살’ 문제 등을 6대 핵심 인권영역으로 선정했습니다.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의 정신질환 뿐 아니라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 즉 빈곤과 같은 근본적인 원인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빈곤-카드연체-대출-빈곤’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나야 자살률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자살 공화국’의 다른 말은 곧 ‘빚 공화국’입니다.
빚 때문에 동반자살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습니다. 빚은 우리 모두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됐습니다.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 걸까요? 과도한 빚을 권하는 행위가 법과 제도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빚을 온전히 개인 책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의식으로 서울·성남 등 여러 곳에서 시민들의 빚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광주복지재단’도 시민들의 빚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다뤄주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빚을 지게 되는 취약 계층, 더 나아가 서민과 중산층에게 빚과 재무 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소중한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