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최선책은 아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수술이다. 아프고 위험해서다. 하나, 수술 외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을 경우엔 어쩔 수 없다. 고통이 두려워 수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끝내는 질병이 우리를 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술을 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고 싶고 해야만 하지만 ‘타이밍’을 놓쳐 메스를 댈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중병에 걸린 기업을 좀비기업, 한계기업이라 한다. 벌어들이는 돈(영업이익)으로 빌린 돈의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몇 해 동안 지속되고 있는 기업을 말한다. 한 마디로, 산소통 즉 외부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명 유지가 어려운 기업들이다. 당장 메스를 대야 할 기업들이다.

이런 기업이 널렸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말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한계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외부감사 대상 약 2만5000개 중 3300여개로 15.2%에 이른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수가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데 있다.

특히 2005∼2013년까지 한계기업을 탈출하지 못한 기업이 지난해 말 기준 약 2400여 개에 달했다. 일시적 질병이 아닌 만성질환에 걸린 한계기업이 약 74%에 달하는 것이다.

재벌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30대 그룹 계열사도 다섯 개 중 한 곳은 좀비기업이다. 약 23%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 생태계가 위중하다.

이들 기업은 벌써 수술을 받았어야 했다. 자연 치유될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방치했다간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을 고착화시켜 마침내 한국 경제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다. 국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결국 이들을 애써 살리느라 투입된 자원만큼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있다. 창의성과 혁신 능력을 갖춘 우량기업과 벤처기업 등에 투입되어야 할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내년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도 금리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의 최대 거래 상대국인 중국의 경제 상황마저 악화되고 있다. 한계기업의 병은 치유 불능 상태가 될 것이다. 동시에 전염성(시스템리스크)도 점차 커질 것이다. 자칫 은행과 한국 경제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마침내 ‘수술’을 결정한 듯하다. 연말까지 대기업을 포함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니 여기까진 대부분 이견이 없다.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수술 방법을 택할 것인가가 문제다. 무엇보다 고통 분담의 방식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구조조정은 ‘외과 수술’과 같다. 시작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도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실직자가 양산되는 등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만 약 1만 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을 거란 전망이다. 모두가 ‘타이밍’을 놓쳤기에 벌어지는 참상이다. 이른 시기에 치료를 시작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대가이다. 하나, 늦었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나마 수술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문제는 수술로 인한 고통을 과연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정부와 금융기관이 정말 구조조정의 의지가 있다면 공정·공평해야 한다.

원칙이 지켜지면 고통을 조금은 줄일 수 있다. ‘대마불사’란 어이없는 상황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 대기업은 제쳐 두고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만 집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 부담을 초래한 경영진과 대주주의 책임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선 안 된다. 고통을 노동자에게만 전가시켜서는 구조조정의 명분이 사라진다. 더 이상 책임을 약자에게만 물어서는 안 된다. 강자들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한국 기업들의 병은 이미 깊다. 수술 외엔 대안이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나마 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해야 한다. 단, 시작한 거 제대로 해야 한다. 이번 ‘타이밍’도 놓치면 그야말로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