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감히 세종대왕에 비교하느냐? 이런 의문이 당연히 들겠지만 모든 정치 지도자의 마음 속에는 세종의 거대한 존재가 어른거릴 것이다. 개혁 군주 정조를 떠올리게 하는 대통령, 탕평의 대가였던 영조를 떠올리게 하는 대통령도 있었지만, 세종에 비교되는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역사상 찬란한 시대가 많지만 그 중 세종 시대는 너무도 감탄스럽다. 한 가지도 잘 하기 힘든데 어떻게 국정의 모든 부문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법제, 경제, 과학기술, 문화예술, 교육, 외교, 국방 등 어느 하나 빠진 데가 없다. 훈민정음 창제가 아니더라도 놀랍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세종은 어떻게 세종이 될 수 있었을까? 세종 시대에는 어떻게 그리 많은 인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을까? 자국의 문자를 창조하겠다는, 상상 불가할 정도의 발상을 했을 뿐 아니라 실천까지 해 낸 세종의 머리는 도대체 얼마나 탁월했던 걸까? 그의 의지는 대체 얼마나 강력했던 걸까?

세종은 왕업에 대한 이해가 워낙 각별했던 걸까? 군주 수업을 워낙 잘 받았던 덕분이었을까? 왕위에 오른 후에도 꾸준하게 ‘공부하는 왕’으로서 집현전을 통해 탁월한 공부생태계를 만들었던 덕분이었을까?

혹자는 장기집권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종보다 더 오래 집권했던 선조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혹자는 부왕 태종의 서슬 퍼런 왕권 확립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왕권이 유능한 왕을 만드는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마치 세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성군인 것처럼 배우지만 결코 그랬을 리가 없다. 세종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었을 것이고 장점과 강점뿐만 아니라 결점과 약점, 트라우마도 있었을 것이다.

누구도 세종대왕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교하지 않지만 그 유사점은 있다. 첫째, 쿠데타 세력의 후예라는 점이다. 조선 창건은 아무리 고려라는 썩고 고루해진 거악을 교체했다는 ‘역성혁명’이라고 명명하더라도 엄연히 군부 세력에 의한 쿠데타다. 쿠데타는 악이기만 한가? 그렇지는 않다. 하물며 맹자조차도 무능한 왕을 교체하는 역성 혁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쿠데타 세력의 후예라 해서 세종의 업적을 폄훼하는 역사는 없다.

둘째, ‘트라우마’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은 과연 트라우마가 없었을까? 세종은 조선 창건 후 불과 26년 만에 왕위에 올랐다. 할아버지 태조의 역성혁명에 대한 트라우마, 더욱이나 아버지 방원의 피 철철 흘렀던 왕권 쟁탈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었을까? 게다가 세종은 두 형을 제치고 후계자가 되었으니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전혀 없었을까?

하지만 유사점은 딱 여기까지뿐이다. 왕이 된 후, 대통령이 된 후, 세종과 박근혜는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바로 국정에서다. 세종은 국정의 직분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트라우마를 완벽하게 뛰어넘었다. 세종의 심리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으나, 역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나오는 대사처럼 세종은 “저는 아바마마의 조선과 다른 조선을 만들겠습니다” 라며 자신의 성장을 채찍질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성장의 과정을 놓쳐 버렸다. 세상의 기대와 우려가 어떠했든, 나는 박근혜가 이 시대의 세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딛고 넘어서야 할 과거가 있고, 뛰어넘어야 할 트라우마가 있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 중에 내세운 괜찮은 국정 어젠다가 있었으며, 왕권은 아니더라도 강력한 지지 세력과 주류 권력 대부분의 지원을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니었다. 그 성장의 한계는 머리의 문제인가, 가슴의 문제인가?

불행히도 성장을 멈추고 자꾸 작아지는 이 시대 대통령을 본다. 대통령 직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를 상상할 줄 모르고, 그러면서도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을 볼 뿐이다. 그러더니 결국 ‘사초 세탁’에 버금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수준에까지 떨어져 버렸다. 한 인간의 멈춰 버린 성장은 얼마나 위험한가? 한 인간의 끝없는 성장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될 수 있는가?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