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친( Peter Turchin)이 쓴 ‘제국의 탄생’을 읽다보면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반복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 같던 제국들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대체 무엇이 이들 제국을 무너뜨렸을까? 수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 붕괴와 부의 불평등 심화가 제국을 무너뜨린 주범이란 설이다. 일리가 있다.

통치 혹은 지배 엘리트들의 도덕성이 추락하면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란 몰염치가 일반화되어 불평등이 극에 달하게 된다. 대중들은 분노를 느끼지만 세상을 바꾸기엔 그 힘이 부족하다. 민중의 무력감은 나날이 커지고 이는 국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끝내 국가는 활력을 잃고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로마제국 역시 초기에는 매우 건강한 가치가 신봉되었다. 엘리트들은 자신의 조국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했다. 재물은 물론 피까지도 공동의 선을 위해 기꺼이 내어 놓았다. 세금도 마찬가지였다. 원로원 의원, 기사 계급, 일반 시민 순으로 세금을 부담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내는 세금 부과의 합리적 준칙에 충실했다. 초기 공화국의 1% 상위 부자들은 평균적인 로마 시민의 20배에서 30배 정도의 부만을 소유했다.

하나, 제국이 부유해지고 강성해짐에 따라 엘리트들의 미덕은 어느새 극한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병들어 간다. 로마 제국 후반기에 원로원 귀족들은 2만 로마 골드 파운드의 재산을 소유했다. 반면, 일반 시민들의 재산은 후하게 쳐도 0.1 로마 골드 파운드가 전부였다. 부의 격차가 자그마치 20만 배에 달한 것이다. 중산층은 궤멸했다. 초기 로마시대엔 소규모 토지를 보유한 중산층이 다수였으나 후반기엔 소작농이 대부분이었다.

로마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한데, 오늘의 우리가 그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부의 불평등이 극한으로 내닫고 있다. ‘월드톱인컴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2012년 기준 소득 상위 10% 소득 집중도는 약 45%로 19개 조사국 중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정도를 가지고 간다는 얘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점차 극단으로 치우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55.8%만을 받고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내에서도 임금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다. 고임금자들이 저임금자들보다 무려 6배나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 빈자와 부자의 격차는 물론 평범한 이들의 임금 격차도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중산층이 궤멸하는 건 당연하다. ‘계층 상승의 디딤돌’로 여겨지던 중간계급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최근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연구한 자료를 보면 그 심각함을 알 수 있다.

2009년 중간계급이었던 100명 가운데 5년 뒤인 2014년까지 그 계급을 유지한 사람은 겨우 72명에 불과했다. 5년 만에 무려 28명이나 하위층으로 밀려난 것이다. 중간계급 유지율이 72%인 셈이다. 중간계급 유지율은 2000∼2009년만까지만 해도 약 79% 정도였다. 한데 2009년 이후 갑자기 급락하고 있다.

이쯤이면 돌아봐야 한다. ‘이번만은 다르다’란 말은 역사에선 통하지 않는다. 현상이 일치하면 결과 역시 동일하다. 그게 역사의 법칙이다. 우린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제국들과 너무나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공동의 선이나 가치보다는 개인적 탐욕이 더 중시되는 사회, 불평등이 점차 극심해져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 그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민낯이다.

화산재에 묻혀 있던 품페이 유적지에서 찾아낸 낙서는 그때를 살았던 평범한 보통 시민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웅변한다. 그건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 평범한 이들의 한탄이기도 한다.

“넌 8번이나 실패했다. 16번이라도 실패했을 거다. 넌 이 일 저 일을 전전했어. 해볼 일은 다 했지만 잘 안되었지. 네 꿈은 뭐였나?” 과연 우리 꿈은 어디 있을까?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