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회의원을 하고 있을 때 “생전 처음으로 ‘혐오 집단’에 속하게 됐다”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만은 아니다. ‘국개의원’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국회의원은 아마도 국민 혐오 집단 1순위일 것이다. 모든 국민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 대상인 국회의원만 모르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아니 알고도 외면한다. 공천 밥그릇 싸움이 살벌한 것을 보면 빤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국회가 혐오 집단인가? 그럴 리는 없다. 국회는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신성하다. 국회가 없다면 권력은 썩어 들어가고 독재로 치달을 것이다. 민의는 전달될 길이 없고 세금은 낭비되고 사회적 약자는 더 밟힐 것이다. 국회에 여전히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원이 혐오 집단이 됐을까? 자승자박인가? 물론 썩은 국회의원들 때문이기도 하다. 직을 악용해서 개인의 치부에만 골몰하는 사람들, 뇌물도 로비도 마다 않는 사람들, 하물며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한 사람들도 있다.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거드름 피우는 꼴이 볼썽사납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집단에서나 썩은 사과, 상한 사과들은 있게 마련이다. 아마 너그럽게 봐준다면 10%는 되리라. 하지만 썩은 사과 때문에 국회의원 전체를 혐오 집단으로 봐야 하나? 이런 현상에는 그렇게 만들려는 세력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국회의원과 정치를 혐오하게 하려는 세력들이다. 누구인가? 정부, 언론, 공공기관, 대기업 들이다. 때로는 대통령도 나선다. 한마디로 현실 권력이다.

깨끗하고 똑똑하고 일 잘하고 대의명분을 따르는 국회의원을 원한다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대통령, 정부, 언론, 공공기관, 대기업, 즉 국회의 입법 기능과 심의 기능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실 세력들은 만만한 국회의원을 좋아한다. 때가 되면 줄을 당길 수 있는 국회의원, 줄 잘 서고 편 잘 들고 말 잘 듣는 국회의원, 정 안 되면 위협할 수 있는 취약점이나 결점이 있는 국회의원들을 선호한다. 깨끗하고 착하고 유능한 국회의원은 까칠한 것이다.

국회의원을 옥죌 수 있는 수단은 수없이 많다. 털면 티끌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식이다. 온갖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은 현실 권력보다도 선출직에 대해서 훨씬 더 엄격할 뿐 아니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운영된다. 권력이 줄을 당기고 검찰과 선관위가 움직이고 정부 편 언론이 움직이면 사람 하나 잡아넣거나 힘을 빼는 건 일도 아니다. 지역 예산 배정을 수단으로 국회의원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장악 기술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이런 적대적 환경에서 어떤 국회의원이 필요한가는 자명하다. 첫째, 밥벌이로서만 국회의원직을 보는 사람은 곤란하다. 둘째, 자기 지역구에만 목을 거는 국회의원은 곤란하다. 셋째, 권력 획득 수단으로서만 국회의원 직을 보는 사람은 곤란하다.

이들은 첫째, 무능하기 십상이고 둘째, 소승적이기 십상이며 셋째는, 자칫 썩어 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국회의원들은 자칫 봉이 되고 호구가 된다. 거수기가 되고 돌격대가 된다. 국회의원으로서는 제대로 할 말 못하고 할 일 안하면서 국회의원 직이라는 허명에 목이 뻣뻣해지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거나 못하겠다는 사람들이기 십상이다.

넷째도 있다. 너무 오래 국회의원직을 한 사람도 사실 곤란하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담당해야 하는 그 엄청난 업무를 제대로 한다면 사실 4년 임기만 해도 진이 빠질 것이다. 엄격한 기준이라면 국회의원은 연임까지만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8년씩이나 같은 직을 했다면 잠시 충전한 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혐오 집단 국회의원’을 벗어나려면 인적 교체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제도의 혁신도 필요하다. 국회를 들러리나 거수기나 맹탕으로 만들려는 현실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스피릿으로 국회의 권위와 책임을 제대로 세우려는 노력이 치열해야 하는 것이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현실 권력에 치열하게 맞짱 뜨는, 착하고 유능한 국회의원을 정말 보고 싶다.

이 칼럼을 쓰면서 ‘꿈도 참 야무지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야무진 꿈이 진짜 꿈 아닌가?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