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노래를 하는가/ 아픈 가슴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노래하지/ 어차피 끊어질 것을 알고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물레에 실을 잣고 있는가/ 어차피 가슴만 아플 뿐인데/ 무엇 때문에 묻어 둔 기억을 들춰내는가”(침묵의 시선 중)

‘침묵의 시선’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죠. 미국 CIA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킨 수하르토 장군은 ‘반공’을 명분으로 공산주의자·지식인·중국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했습니다. 자그마치 100만 명이 넘는 대학살이었습니다. ‘학살을 학살로 직시하기’ 위해 오펜하이머 감독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을 ‘가해자가 찍은 가해자의 과거’라고 한다면,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가 찍은 가해자의 현재’라 할 만합니다.

‘침묵의 시선’의 주인공은 안경사 아디입니다.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의 대학살 당시 100만 명이 죽었지만, 목격된 희생자는 단 한 명의 청년 ‘람리’뿐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디의 형입니다. 아디가 태어나기 전, 형은 학살당했습니다. 대학살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은 거기에 멈춰 있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디의 어린 아들은 가해자들이 영웅이 되고, 학살이 자랑스럽게 기억된 역사를 배우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형을 죽인 살인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시력을 교정해주는 아디의 깊고 슬픈 시선을 담아 갑니다.

아디와 가족들은 ‘람리’를 죽인 사람들과 같은 마을에서 지냅니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고통과 아픔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나지막이 기도할 뿐입니다. ‘살인자들의 자식과 그 손주들까지 똑같이 고통을 받게 하소서.’

‘람리’는 침묵의 이름입니다. 무관심·회피·부인·억압이라는 ‘침묵의 음모’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그와 반대로 학살자들은 자신이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학살했던 장소에서 재현하며 증언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만큼 당당합니다.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왜 다 나은 상처를 들추려고 하느냐”며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지난 일은 잊어요. 그때를 교훈 삼아 잘 지내면 되죠”라고 타이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강요된 망각에 맞서 ‘과거를 기억’하려는 ‘아디’에게는 “지금이 그때라면 자네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몰라”라고 협박도 합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말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 말은 가해자들에겐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가려는 수단이고, 피해자들에겐 공포 속에 묻은 슬픔이다. 하지만 과거는 죽지 않는다.”

이 영화는 학살이라는 참사 위에 세워진 거짓된 사회가 어떻게 찢어져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실과 정의를 얼마나 바라는지를 보여 줍니다.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 줍니다.

‘람리’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공포의 근원을 일깨우는 것이며, 그것은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침묵과 망각에 맞서 ‘진실을 말하기’(Telling the truth)에서 시작합니다. 아디가 “저는 당신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에요.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온 거예요”라고 말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안경사 아디의 눈으로 본 ‘침묵의 시선’은 인도네시아를 들여다보는 ‘창’이 아닙니다. 고문과 학살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거울’입니다. 수많은 민간인 학살, 고문 그리고 5·18에 대해 사죄나 반성은커녕 왜곡과 의도적인 폄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선 시장은 ‘5·18은 극복해야 할’것이라고 말합니다. ‘침묵의 시선’은 우리를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끊어질 줄 알면서도 물레에 실을 잣고, 아플 것을 알면서도 기억을 들춰내는 것은, 그래야 다시는 아프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