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속에서 개혁·민주·진보 세력이 끊임없이 분열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분열로 인해 힘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득권 세력은 또 얼마나 똘똘 잘 뭉치는지, 어떻게나 돈과 공권력과 갖은 압력을 능수능란하게 자기 이익을 위해 잘 쓰는지, 분노가 치밀 정도로 혐오스럽다.

이런 장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더 속상하다. 왜 분열하는가? 생각이 달라서? 옳지 않아서? 방향이 잘못 돼서? 옳고 그름과 대의를 따지는 능력이 개혁·민주·진보 세력에게 훨씬 더 발달되어 있어서? 실리보다 명분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러나 작금의 분열상은 꼭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네가 아니라 내가 주도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내가 밀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앞설 수 없기 때문에’ ‘내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 역할이 없어지기 때문에’ ‘내 존재가 사그라들기 때문에’ 등등. 이런 계산이 작동하는 분열은 ‘이기적 분열’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분열하면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다른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면면을 보라. 그들이 과연 희망을 보여 주고 있나? 그들은 과연 대의명분을 위해서 깃발을 흔드는 사람일까? 희망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가? 한 조각의 이익을 움켜쥐려는 사람들은 아닌가? 자신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역할도 존재감도 불분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득권 세력은 주도면밀하게 분열을 부추기고, 그런 부추김에 힘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있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어떤 경우에나 분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이기적 분열’에 대해서 학을 뗀다. “친노·비노로 나뉘어 싸우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맨날 갈라서고 합치고 또다시 반복하고, 누굴 위해 그러는 건데요?” “다 자기가 주도하겠다고 싸움하는 거 아니에요?” “자기가 낫다는데, 무슨 도토리 키 재기 하는 것도 아니고, 원!”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오랜 시간 분열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도 이젠 학습을 거쳤다.

기득권 세력이라고 분열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에게는 ‘이익 또는 먹이사슬’이라고 하는 강한 연결 고리가 있다. 지금 당장 이 자리, 이 기회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자리, 다른 기회가 있을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잘못 찍혔다가는, 괜스레 튀었다가는, 한 방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또한 그런 공포심을 잘 이용하는 세력이기도 하다. 거대한 먹이사슬이 기득권 세력을 떠받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민주·진보 세력은 어떤 연결고리로 분열을 막을 수 있나? 물론 인간 세상인지라 이익이나 먹이사슬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분열해서 계속 지기만 한다면 대체 무엇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인가? 30여 퍼센트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사회 권력과 재력을 차지하는 기득권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전히 가장 강한 연결 고리는 ‘대의명분’일 수밖에 없다.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나라를 맡겨 둘 것인가? 국가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익 모델로 사용했던 이명박 정권, ‘무능과 무책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국민이 보이지 않는가? 분열하다가 또 역사의 기회를 잃을 것인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통합의 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통합이 가능하다, 통합이 되어야 이길 수 있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다. 이길 희망이 없어서 분열하며 고작 작은 쪼가리 하나 지키려 혈안이 되는 것이다.

부디 이긴다는 희망을 보여 다오! 왜 이겨야만 하는지 대의를 보여 다오! 이 싸움이 명분이 있음을 믿게 해 다오! 대의에 희생만 하는 것이 아님을 믿게 해 다오.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든,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믿게 해 다오. “알려야지 않겠나! 우리가 아직 싸우고 있다는 것을!”

<전 국회의원·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