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속도에 맞춘 건축
2015년 06월 12일(금) 00:00 가가
서윤영의 '집과 사람'
학교에서 건축을 배울 때 기말이 되면 도면과 모형을 함께 제출했다. 1/200 혹은 1/300 스케일로 만들어진 장난감 같은 모형을 보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형을 위에서 내려다보지 말고, 그것은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서 보라고.
사람은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다. 모형으로 만들어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귀엽고 예뻤던 건물을 실제 크기로 지어 놓으면 겉만 번지르르할 뿐 내부는 엉망이 되기 쉽다고, 사람은 절대 건물을 내려다보지 못한다고 그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비행기에서 그 도시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세기 들어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거리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건물은 인간의 보행속도에 맞추어 계획되었다. 천천히 걸으며 주위의 건물을 볼 수 있도록 건물은 휴먼스케일이 사용되었고, 섬세한 디테일이 요구되면서 간판도 작게 만들었다.
또한 걷다가 지친 사람을 위해 차양막이나 벤치 등이 곳곳에 설치되었고 2층에서 거리의 사람과 바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테라스와 데크도 많이 발달하였다. 바로 엽서와 사진으로 남아 있는 18∼18세기 유럽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건물은 변하기 시작한다. 고속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창밖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속도가 빨라지면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대신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고 도로 위의 글씨도 압축이 되어 보인다.
따라서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는 건물,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 등장하게 된다. 거대한 횡선(衡線)의 강조, 원색의 강렬한 색상, 홍보용 수직탑, 거대한 간판, 거대한 주차장 등을 특징으로 하는 건축이다. 대표적인 예가 주유소, 고속도로 휴게소를 비롯하여 대형할인점, 자동차에서 주문이 가능한 맥도널드 매장 등이다. 자동차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발달한 건축이자 처음부터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건축이라 하겠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러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행자의 보행속도에 맞춘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의 주행속도에 맞춘 도시가 전국을 뒤덮게 된 것이다. 휴가나 방학을 맞이하여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곳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는 보행자 중심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배낭을 매고 편히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시이며 그래서 유럽 특유의 배낭여행 문화도 생긴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도시는 또 한번 변하고 있다. 비행기의 보편화에 따라 비행기의 비행속도에 맞춘 건축이 등장한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을 하다 보면 커다란 건물들이 점점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반대로 착륙을 할 때면 장난감 같던 건물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새나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시야, 바로 하늘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건물을 만날 때가 있다. 사각형의 모양에서 벗어나 원형 혹은 타원형은 건물, 벽면에 커다란 장식을 했거나 옥상 부분에 과도한 시설과 장식물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이런 건물이 지어진 이유는 건축기술의 발달에 따라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형태의 건물이 지어지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또한 건물이 커질수록 모형의 스케일도 같이 커지는데 1/300, 1/500의 스케일로 만들었을 때 멋진 건물이 그대로 1:1 스케일로 지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모형으로 만들었을 때 멋진 건물을 실제로 지어 놓고 보면 마치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거리로 나온 것처럼 만화 같고 SF 같은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그것을 가장 경계하도록 배웠는데 21세기인 지금, 오히려 그런 건물이 더욱 유행하고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실제 그 자리에 가서 보면 너무 크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은 비행기에서 그 모습을 찍어 관광지의 그림엽서로 사용될 뿐 실제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 아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세기 유럽 도시들이 걷기 편한 도시이자 그림으로 그렸을 때 아름다운 도시라면, 20세기의 미국 도시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좋은 도시이자 사진으로 찍었을 때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리고 21세기 중동과 중국 등 신흥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도시는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보았을 때나 그 주변을 선회하면서 보았을 때 아름답기 때문에 동영상으로 찍었을 때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
20세기가 자동차의 시대였듯 21세기에 비행기는 더욱 대중화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비행기의 비행속도에 맞춘 거대한 건물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며칠 그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극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도시가 될 지는 몰라도, 항상 그 도시에 살며 자동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이동하는 그 사람에게는 어떤 건축이 될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건축칼럼니스트>
사람은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다. 모형으로 만들어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귀엽고 예뻤던 건물을 실제 크기로 지어 놓으면 겉만 번지르르할 뿐 내부는 엉망이 되기 쉽다고, 사람은 절대 건물을 내려다보지 못한다고 그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비행기에서 그 도시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걷다가 지친 사람을 위해 차양막이나 벤치 등이 곳곳에 설치되었고 2층에서 거리의 사람과 바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테라스와 데크도 많이 발달하였다. 바로 엽서와 사진으로 남아 있는 18∼18세기 유럽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러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행자의 보행속도에 맞춘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의 주행속도에 맞춘 도시가 전국을 뒤덮게 된 것이다. 휴가나 방학을 맞이하여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곳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는 보행자 중심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배낭을 매고 편히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시이며 그래서 유럽 특유의 배낭여행 문화도 생긴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도시는 또 한번 변하고 있다. 비행기의 보편화에 따라 비행기의 비행속도에 맞춘 건축이 등장한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을 하다 보면 커다란 건물들이 점점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반대로 착륙을 할 때면 장난감 같던 건물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새나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시야, 바로 하늘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건물을 만날 때가 있다. 사각형의 모양에서 벗어나 원형 혹은 타원형은 건물, 벽면에 커다란 장식을 했거나 옥상 부분에 과도한 시설과 장식물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이런 건물이 지어진 이유는 건축기술의 발달에 따라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형태의 건물이 지어지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또한 건물이 커질수록 모형의 스케일도 같이 커지는데 1/300, 1/500의 스케일로 만들었을 때 멋진 건물이 그대로 1:1 스케일로 지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모형으로 만들었을 때 멋진 건물을 실제로 지어 놓고 보면 마치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거리로 나온 것처럼 만화 같고 SF 같은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그것을 가장 경계하도록 배웠는데 21세기인 지금, 오히려 그런 건물이 더욱 유행하고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실제 그 자리에 가서 보면 너무 크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은 비행기에서 그 모습을 찍어 관광지의 그림엽서로 사용될 뿐 실제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 아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세기 유럽 도시들이 걷기 편한 도시이자 그림으로 그렸을 때 아름다운 도시라면, 20세기의 미국 도시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좋은 도시이자 사진으로 찍었을 때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리고 21세기 중동과 중국 등 신흥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도시는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보았을 때나 그 주변을 선회하면서 보았을 때 아름답기 때문에 동영상으로 찍었을 때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
20세기가 자동차의 시대였듯 21세기에 비행기는 더욱 대중화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비행기의 비행속도에 맞춘 거대한 건물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며칠 그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극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도시가 될 지는 몰라도, 항상 그 도시에 살며 자동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이동하는 그 사람에게는 어떤 건축이 될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건축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