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동창 모임, 졸업하고 몇 십 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다. 낯설다. 아랫배는 나오고 잔주름이 만만치 않다. 내 모습도 그럴 거다. 괜히 술 한 잔을 들이킨다.

시인은 지는 꽃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그럴 수 있을 거다. 하나, 나는 아직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진 못한다. 지천명을 넘겼지만 부끄럽게도 나이 들어가는 자연 현상을 쉬 인정하지 못한다. 봄날 우르르 지고만 목련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장미가 여전히 더 좋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늙는다는 것, 노인이 되는 걸 받아들이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공식적인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자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얼핏 반갑기도 했다. 지난 달 26일 대한노인회가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현재의 노인연령 65세를 70세로 올리자는 주장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의 범주에 강제로 편입되는 게 썩 유쾌하진 않을 듯하다. 두 다리는 여전히 팽팽하고 두뇌 회전도 나름 짱짱하다면 말이다.

또 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다. 바로 ‘돈’이다. 나름 충분한 생활능력이 있다면 노인 취급을 받는 건 분명 서글픔을 넘어 분노를 느낄 일일 것이다.

한데 건강, 재력, 지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나이만 먹어간다면 어떨까. 대책 없는 노년이 길어진다는 건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다. 건강과 지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좋은 일자리는 언감생심이고 질 나쁜 일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모아놓은 재산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그야말로 고통스런 노년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식 노인 연령마저 높아진다면 그야말로 인생 후반부의 삶은 끔찍할 수 있다.

한국의 노인은 유난히 가난하다. 노인 빈곤율, 자살률 공히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일등이다. 노인 두 명 중 한 명은 국민소득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월 125만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것도 평균이다. 이들 중 다수는 월 100만 원도 호사스럽다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이른바 중노인들의 빈곤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한데, 이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심각한 건 한국 인구의 최다층인 베이비부머 세대들마저 속속 이들에 합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노인 연령이 더 높아지면 상황은 어찌될까?

정년이 예순 살로 정해졌다지만 대부분은 50대 초반이면 기존 일자리에서 밀려난다. 지난 1일 자 신문에도 국민은행의 직원 1000여 명이 명퇴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중년의 실업이 재취업으로 이어지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기껏해야 나날이 열악해지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뿐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60세에 은퇴한다 해도 각종 노인복지를 받을 때까지 5년간은 소득절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노인 기준 연령이 높아지면 그 기간은 다시 5년이 더 늘어난다. 이 기간을 대체 뭐로 버티란 말인가. 통상 경비나 청소 등의 일자리도 65세가 한계 연령이다. 그 후엔 대체 어쩌란 말인가.

우린 누구도 노인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건 기분 좋은 느낌을 줄 수가 있다.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심리의 핵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선행돼야 할 게 있다. 생물학적 건강과 물리적 재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력에 의한 것이든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노인의 기준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비참한 중노인만을 양산할 뿐이다.

지금은 가난한 노인들이 국가재정을 걱정해 그 기준 연령을 올리자고 할 때가 아니다. 혹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할 때가 아니다. 졸라맬 허리라도 있다면 그럴 수 있다. 한데 정말 우리 노인들이 그럴 여유가 있다고 믿는가? 한국의 오늘은 노인 세대의 처절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에게 또 다시 인내를 요구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린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