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특히 그리스는 OECD 국가 중 탈세가 가장 만연한 나라 중 하나다. 그리스는 선박왕과 같은 재벌, 의사·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이 노골적으로 탈세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공공연한 탈세의 원인을 400년간 지속되었던 터키 지배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이를테면 터키 강점기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애국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논리가 궁색하다는 것은 그리스 사람 스스로도 잘 안다. 그리스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유럽국가 중에서 복지예산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이유도 바로 이 세수 부족 탓이 크다.

어쨌든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이 금융위기 속에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후, 탈세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리스 정부는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수영장 딸린 집에 살면서도 재산세 한 푼 내지 않던 파렴치한 탈세자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등의 강력한 세수 확보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거두면서 최근까지 그리스의 납세 문화가 확 바뀌게 되었다.

특급호텔에서도 현금 할인을 하고, 카드 결제기는 아예 전원코드까지 뽑아 버리던 상가가 신용카드 결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 길거리 노점이나 주말 번개시장에서 거리음식을 파는 상인들, 심지어 파르테논에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까지 금전출납기를 이용해서 실시간 세금 신고를 하게 되었다.

1000 원을 벌건 1000 만원을 벌건 세금은 내야한다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일견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납세 투명성이 확보된 셈이었다. 한데 실제 그리스 정부의 세수는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늘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세수가 감소했다.

이유는 부자들의 탈세가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해운을 중심으로 거대자본을 구축한 그리스 부자들은 선사 등록지를 다른 나라로 옮겨버렸고,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조세회피지역이나 스위스 은행으로 자금을 도피시켰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조세회피지역의 자본 도피자 명단이 그리스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다.

한데 그리스 언론사들은 전혀 그것을 보도하지 않았고 심지어 재산 도피자 명단을 취재해서 보도하려던 한 잡지사는 법원의 행정명령에 의해 보도가 강제로 저지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개인의 명예를 훼손 할 수 있다는 공개 금지 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그리스는 가장 많은 자본 도피자를 보유한 나라이면서 사실에 대한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대부분의 부를 소유한 부자들이 이렇게 자본을 도피하며, 본사까지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하자 정부는 다급해졌고 결국 이들에 대한 세무당국의 견제는 무뎌졌다. 그러자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던 사람들도 다시 영수증 발행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전국민 탈세 시대로 다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스에서 보듯 세금체계가 한번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세금 논란이 뜨겁다. 소득공제 축소로 인해 서민들이 환급받을 세금은 고사하고 더 많은 세금폭탄을 떠안게 된 ‘13월의 테러’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그리스처럼 증세가 필요하다. 경기 위축으로 세수는 감소하고 정부는 복지수요나 재정을 부양 할 재원이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는 국민들을 잘 설득했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본질은 고소득자에 불리하고 중산층 이하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법인세 인상이나 소득세율 최고 구간 확대와 같은 과감한 정책을 먼저 시행하지 않고, 담뱃값 인상과 같은 정책은 거침없이 시행했다.

불신이 쌓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담뱃값 인상은 흡연자건 아니건 서민을 대상으로 한 세금전쟁으로 비쳤고, 정부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세수를 채운다는 의심을 사게된 것이다. 그리스의 납세체제가 무너진 이유가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 처럼, 우리도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정책이 힘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세금 문제는 한번 흔들리면 그리스처럼 걷잡을 수 없다. 정부는 세금문제에 대해 더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공평과세 문제에 더 과감해야 한다.

<지식나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