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교통요금 인상을 둘러싼 큰 논쟁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차·시외버스·지하철 등이 국영기업인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IMF와 EU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교통요금 인상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을 주는 쪽에서는 정확한 포인트를 짚은 것이다.

공공요금, 특히 교통부분의 적자가 그리스 재정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제금융은 다른 나라가 그리스 국민의 공공요금을 보전해주는 결과가 된다.

원래 이런 점들이 구제금융 조건의 주요 포인트다. 떼일 각오를 하고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빌려준 돈이 제대로 쓰여 언젠가 돌려받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해서 빌린 쪽의 재기가 불가능한 쪽으로 몰고가서도 안 된다. 구제금융이 시행될 때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은 대개 이 부분이다.

한데 그리스는 공공요금 특히 교통요금 인상을 완강히 거부했다. 일부 의원들은 극단적으로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텄다. 빌려주는 쪽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리스가 이런 터무니 없는 버티기를 계속한 이유는 우리 예측과는 좀 다르다. 경기가 불황일 때 부자들은 메르세데스를 타면 되지만, 가난한 이들은 이동에 제한을 받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사고는 ‘경기가 어려울 수록 교통요금을 더 내려야지, 반대로 올린다는 것은 빈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국가의 관점에서는 전자가 옳은 선택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후자가 옳다. 이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결국 자신들의 몫이다.

사형제도도 그렇다. 지구상에 사형제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본거지인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여전히 사형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 파키스탄 역시 한동안 사형을 시행하지 않다가 테러 이후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번에 끔찍한 테러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이 테러범을 사형시킨다는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한데 적지않은 사람들이 파키스탄의 테러범 사형을 반대한다. 이유는 파키스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이미 수천 명에 이르고 그중 몇명은 분명 정치적 이유나 다른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우려는 테러범에 대한 사형 집행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국가폭력이 다른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킬 것에 대한 걱정에 있다. 이렇듯 이면을 보면 단순하지 않은 것이 제도다. 이 때문에 국가나 사회제도는 다소 비효율적이라 하더라도, 기본가치를 건드리는 일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졌다. 법을 충분히 공부하고 법리에 밝은 헌법재판관들이 긴 시간의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 법리상의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강대강 대치를 하는 분단국가에서 북한의 혁명이론과 동조하는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한다. 충분히 옳은 생각이고, 좌든 우든 대개 통진당의 실제 노선이 그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해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한다.

그 이유는 민주적 가치 때문이다. 통진당의 노선이 그릇되고 해석에 따라 이적성을 띠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정당이라는 결사체를 국가가 해체한다는 것이 또다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이 들지 않는 정당이 있을 경우 공권력이 해체를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존 가치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내용은 다르지만 세가지 사안의 기본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가지 모두 현실적 요구와 필요, 그리고 가치와 명분사이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선택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 피상적인 호불호가 아닌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엄밀한 성찰과 숙고가 필요하다.



<지식나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