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도시
2014년 12월 19일(금) 00:00 가가
서윤영의 '집과 사람'
“이런, 제일 중요한 게 빠져 있잖아…. 건물만 잔뜩 들어차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잖아. 도면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 때면 항상 사람을 함께 그려 넣으라고, 건물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야.”
이럭저럭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 건축학과에 갓 입학했던 때라 의욕이 충만해 있었다. 과제물이 산더미처럼 밀려와도 그게 힘든 줄을 모르던 시절, 그 날도 밤을 새워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학교에 가져갔다. 그게 날아가는 새의 날개를 본 떠 그린 어느 미래 공항의 대합실이었는지, 비 온 뒤 힘차게 뻗어나가는 죽순에서 영감을 얻은 미래 도시의 고층빌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교수님의 한 마디 일갈만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나는 크고 화려한 건물만을 잔뜩 그려갔는데 정작 교수님은 사람이 그려져 있지 않다고, 건물 옆에 사람을 함께 그려 넣음으로써 건물의 크기가 가늠 되는 거라고 하셨다. 학교 다닐 때 그리던 도면의 축적은 1/100 정도이기 때문에 사람도 1.7㎝ 정도로 쉽게 그려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면서 건물의 크기와 스케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1/200은 예사요, 1/300, 1/500 때로 1/1000 축적의 도면도 그려보았다. 이렇게 축적이 커질수록 사람의 크기는 개미처럼 점점 작아진다. 어느 사이엔가 사람은 생략하고 그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갔고, 그러다 보니 사람은 보지 않고 건물만 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도시란 어떤 도시인가’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도시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도시의 표정이 밝아야 하고, 도시의 표정이 밝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행동이 밝고 활기차야 한다. 일례로 1980년대 학생시위가 한창 이었을 때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는 전경과 사복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곳은 보행자 광장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잠시 산책을 나온 근처의 직장인, 아이를 동반한 주부는 물론 때론 아마추어 가수의 노래마당이 펼쳐 지기도 한다. 당시와 비교해 그곳에 새롭고 화려한 건물이 들어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사회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행위가 바뀌면서 아름다운 거리가 된 것이다. 이때 새로 조성된 시민광장은 도시기반시설에 해당하는 스트리트 퍼니처(street furniture)라 할 수 있다.
주택의 방마다 적절한 가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가정이 안락해지는 것처럼, 거리에도 가로등, 가로수, 화단, 벤치, 음수대, 분수, 화장실, 작은 쉼터공원 등 적절한 시설들이 곳곳에 갖추어져 있어야 안락한 도시가 된다. 하지만 그곳에 아스팔트 도로 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자동차만이 지나다니는 황량한 길일 뿐이다. 주변에 화단과 벤치, 분수대가 있다면 누군가 그곳에 머물 것이며, 머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밝은 표정의 아름다운 거리가 될 것이다.
또한, 스트리트 퍼니처는 거리의 건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안정적이다. 건물과 거리가 급격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아름다운 건물이 된다. 요즘 카페는 거리를 향해 작은 테이블을 몇 개 내어 놓은 곳이 많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거리를 걷는 사람은 서로 자연스러운 시선 교류가 가능하며, 그래서 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차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가장 섬세한 건축요소 중 하나가 툇마루인데 이것 역시 실내공간과 야외공간을 유기적으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전통건축은 수돗가, 장독대, 작은 꽃밭 등이 오밀조밀 마련된 안마당이 있어 이곳이 생활의 중심공간이 된다. 그리고 안마당 주변으로 툇마루가 둘러쳐져 있어 비 오는 날에도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기 좋다.
수돗가, 장독대, 툇마루 등(스트리트 퍼니처)이 건물(툇마루와 댓돌)과 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꽃밭을 돌보며 바람을 쐴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현대도시의 대형건물에 확대시켜 보아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며 그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즉 제일선(第一線)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은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행위이다. 제이선(第二線)에는 그러한 사람들의 행위가 일어나도록 도심기반시설 즉 스트리트 퍼니처가 있어야 하며, 끝으로 제삼선(第三線)에 물러나 있어야 할 것이 건물이다.
그런데 그 삼선에 물러나 있어야 할 건물이 제일선으로 나올 때 사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건물만이 보이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처음 건축을 공부할 때 저지른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럭저럭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 건축학과에 갓 입학했던 때라 의욕이 충만해 있었다. 과제물이 산더미처럼 밀려와도 그게 힘든 줄을 모르던 시절, 그 날도 밤을 새워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학교에 가져갔다. 그게 날아가는 새의 날개를 본 떠 그린 어느 미래 공항의 대합실이었는지, 비 온 뒤 힘차게 뻗어나가는 죽순에서 영감을 얻은 미래 도시의 고층빌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교수님의 한 마디 일갈만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면서 건물의 크기와 스케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1/200은 예사요, 1/300, 1/500 때로 1/1000 축적의 도면도 그려보았다. 이렇게 축적이 커질수록 사람의 크기는 개미처럼 점점 작아진다. 어느 사이엔가 사람은 생략하고 그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갔고, 그러다 보니 사람은 보지 않고 건물만 보기 시작했다.
주택의 방마다 적절한 가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가정이 안락해지는 것처럼, 거리에도 가로등, 가로수, 화단, 벤치, 음수대, 분수, 화장실, 작은 쉼터공원 등 적절한 시설들이 곳곳에 갖추어져 있어야 안락한 도시가 된다. 하지만 그곳에 아스팔트 도로 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자동차만이 지나다니는 황량한 길일 뿐이다. 주변에 화단과 벤치, 분수대가 있다면 누군가 그곳에 머물 것이며, 머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밝은 표정의 아름다운 거리가 될 것이다.
또한, 스트리트 퍼니처는 거리의 건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안정적이다. 건물과 거리가 급격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아름다운 건물이 된다. 요즘 카페는 거리를 향해 작은 테이블을 몇 개 내어 놓은 곳이 많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거리를 걷는 사람은 서로 자연스러운 시선 교류가 가능하며, 그래서 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차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가장 섬세한 건축요소 중 하나가 툇마루인데 이것 역시 실내공간과 야외공간을 유기적으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전통건축은 수돗가, 장독대, 작은 꽃밭 등이 오밀조밀 마련된 안마당이 있어 이곳이 생활의 중심공간이 된다. 그리고 안마당 주변으로 툇마루가 둘러쳐져 있어 비 오는 날에도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기 좋다.
수돗가, 장독대, 툇마루 등(스트리트 퍼니처)이 건물(툇마루와 댓돌)과 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꽃밭을 돌보며 바람을 쐴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현대도시의 대형건물에 확대시켜 보아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며 그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즉 제일선(第一線)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은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행위이다. 제이선(第二線)에는 그러한 사람들의 행위가 일어나도록 도심기반시설 즉 스트리트 퍼니처가 있어야 하며, 끝으로 제삼선(第三線)에 물러나 있어야 할 것이 건물이다.
그런데 그 삼선에 물러나 있어야 할 건물이 제일선으로 나올 때 사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건물만이 보이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처음 건축을 공부할 때 저지른 실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