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아마도 세월호 참사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4월 16일에 일어난 이 참사를 규명하기 위한 ‘세월호 3법’(세월호 특별법, 정부조직법 개정, 범죄수익은닉방지법)을 지난 달 30일 여야가 합의했다.

이 법안들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0여 일이 지난 다음에야 세월호 특별법을 마련한 우리 정치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참사가 왜 일어났고 누가 잘못했는지의 올바른 사실 규명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안겨준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가 참사의 원인 및 책임 규명이라면, 다른 하나는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안전을 소홀히 해 왔는지를 생생히 증거한 만큼 ‘안전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하나로 부각됐다. 잘 사는 나라, 민주화된 나라에 이어 안전한 나라 만들기는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선 세가지 과제가 중요하다. 첫째, 정부는 국민 모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재난 대처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범정부적 차원에서 재난이 발생할 경우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때 두 가지를 특히 유의해야 한다. 사후 대처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에 주력해야 하는 게 하나라면, 재난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위험의 외주화’를 제도적으로 금지시켜야 하는 게 다른 하나다. 정부는 자신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일이 다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에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

둘째, 안전 사회를 위한 시민들의 태도와 문화도 변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의식’이다. 의식주를 포함한 개인적 생활이든 직업을 포함한 사회생활이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 가운데 하나는 안전불감증이다. 안전은 이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지, 이를 도외시하면 예기치 않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점에서 자연적 위험이든 인위적 위험이든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는 안전의식을 가져야 한다. 안전을 경제적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기본조건으로 인식하는 안전의 시민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거시적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패러다임은 무한경쟁·적자생존·약육강식으로 특징지어지는 시장 만능주의였다. 시장 만능 패러다임에서 안전과 생명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 만능 패러다임을 생명 존중 패러다임으로 변화시켜 나갈 때에만 안전한 대한민국을 제대로 성취할 수 있다. 생명 존중 패러다임은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는 ‘한 국민’ 정치,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이뤄지는 조정 시장경제, 국가-시민사회 간의 유기적 협력을 강화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생산적으로 결합하는 연대적 개인주의, 그리고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세계화를 모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200여 일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참사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의 마음은 더없이 참혹했을 것이다. 생존자와 그 가족 역시 참담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의결되면 곧 출범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올바르게 규명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고,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되뇌었던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말에 담긴 의미 중 하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에 있다. 어떤 약속이든 말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소중한 약속들을 너무 쉽게 망각하면서 살아 왔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약속만은 제대로 실천되길 바라는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