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건물 뒤의 깊은 그림자
2014년 09월 26일(금) 00:00 가가
서윤영의 '집과 사람'
해외 도시들에는 색다른 명소들이 있는데, 그 중 중국 베이징에는 따산즈(大山子) 789 라는 예술인마을이 있다. 과거 사회주의 시절 공장이었던 이곳은 중국이 자유경제로 바뀌면서 잠시 버려지는 듯 했지만 젊은 예술인들을 후원하기 위한 창작촌으로 재탄생하여 훌륭한 명소가 되었다.
베이징뿐만 아니라 유럽의 도시에는 버려진 공장과 창고 건물을 새로운 장소로 전환시킨 경우가 많다. 주로 19세기 산업혁명 시절의 공장이 있던 공업지대였는데 시대가 변해 굴뚝산업이 쇠퇴하면서 한동안 버려졌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새롭게 재단장되는 사례다.
이를테면 과거 독일의 라인강 주변은 철광석과 석탄광산이 분포한 광공업 지대였지만, 점차 광산업이 쇠퇴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그러자 독일 정부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이곳을 창의적 문화시설 단지로 재단장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서울의 구로공단은 한동안 낙후지역으로 있다가 최근 구로 디지털단지와 패션의 메카로 변모하고 있으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 밀집지역 역시 예술인들의 창작촌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로동과 영등포 등지는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에 산업화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공단이 서울 외곽이나 중국 등지로 이전하면서 쇠퇴하였지만 최근 문화 디자인의 요람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업지역이던 곳만 새롭게 변모하는 것은 아니다. 경복궁의 북쪽에 있어 북촌이라 알려진 서울의 가회동 일대는 한옥보존지구로 오래도록 묶여 있어 개발이나 새 건물의 신축이 불가능한 지역이었지만 최근 신축과 증개축이 허용되면서 북촌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한 옥인동 일대는 본래 청와대가 인근에 있어 개발이 제한된 지역이었다가 최근 새로운 음식점과 카페 등이 생기면서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가회동, 옥인동, 삼청동 일대는 인근에 종로와 광화문이 있어 서울의 한복판인데도 개발이 제한된 탓에 도심 속의 낙후된 섬처럼 남아 있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곳이 갑자기 개발이 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는 현상을 도심 재활성화라 한다. 노후된 지역이 새로운 상권으로 변모하는 이러한 현상은 일견 바람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그림자가 있다.
본디 이곳은 시내 한가운데 있으면서 집값이나 임대료가 저렴하여 본래부터 그곳에 살아온 노인들이나 직업·생계상의 이유로 도심에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주거지가 되어 왔다. 그런데 점차 개발이 되면서 외지인이 노후주택을 매입하여 상가 혹은 오피스로 수리를 하여 임대하는 경우가 증가하자, 임대료와 집값이 점차 오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본래 그곳에 살았던 서민이나 노인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곤란을 겪게 되고, 심지어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사실 서민이나 노인들은 새 주거지를 찾는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집값이 더 저렴한 곳을 찾아 아예 변두리나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계의 터전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경험했던 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제시된 바 있다. 기존의 동네에 외지인의 자본이 들어와 지가를 상승시켜 결국 기존의 원거주민이 퇴거하는 현상인데, 최근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좀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 서울 홍익대 주변의 연남동 등은 최근까지 개발이 비교적 더딘 조용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홍대 입구가 새로운 부도심으로 부상하면서 신촌과 홍대 일대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이러한 곳에 중국 자본이 들어와 건물을 매입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들 건물은 수리나 신축을 거쳐 재탄생하면서 주로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숙박이나 상업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글로벌시대에 맞추어 중국인 관광객 일명 ‘요우커’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북촌이나 서촌 혹은 연남동 등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울의 작은 마을에도 도심 재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외국의 자본이 밀어닥치고 있다. 서울의 서쪽에 자리잡은 그 곳은 조선시대부터 중국 사신을 맞아 들이던 모화관이 있던 자리이기도 해서 더욱 아이러니하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도 함께 길어지는 법이다. 도심의 오래된 동네들이 낡고 후락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또한 숨겨진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비단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의 현상 혹은 서울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방의 도시에도 또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칼럼니스트>
베이징뿐만 아니라 유럽의 도시에는 버려진 공장과 창고 건물을 새로운 장소로 전환시킨 경우가 많다. 주로 19세기 산업혁명 시절의 공장이 있던 공업지대였는데 시대가 변해 굴뚝산업이 쇠퇴하면서 한동안 버려졌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새롭게 재단장되는 사례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서울의 구로공단은 한동안 낙후지역으로 있다가 최근 구로 디지털단지와 패션의 메카로 변모하고 있으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 밀집지역 역시 예술인들의 창작촌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처럼 공업지역이던 곳만 새롭게 변모하는 것은 아니다. 경복궁의 북쪽에 있어 북촌이라 알려진 서울의 가회동 일대는 한옥보존지구로 오래도록 묶여 있어 개발이나 새 건물의 신축이 불가능한 지역이었지만 최근 신축과 증개축이 허용되면서 북촌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곳이 갑자기 개발이 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는 현상을 도심 재활성화라 한다. 노후된 지역이 새로운 상권으로 변모하는 이러한 현상은 일견 바람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그림자가 있다.
본디 이곳은 시내 한가운데 있으면서 집값이나 임대료가 저렴하여 본래부터 그곳에 살아온 노인들이나 직업·생계상의 이유로 도심에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주거지가 되어 왔다. 그런데 점차 개발이 되면서 외지인이 노후주택을 매입하여 상가 혹은 오피스로 수리를 하여 임대하는 경우가 증가하자, 임대료와 집값이 점차 오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본래 그곳에 살았던 서민이나 노인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곤란을 겪게 되고, 심지어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떠나야 한다. 사실 서민이나 노인들은 새 주거지를 찾는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집값이 더 저렴한 곳을 찾아 아예 변두리나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계의 터전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경험했던 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제시된 바 있다. 기존의 동네에 외지인의 자본이 들어와 지가를 상승시켜 결국 기존의 원거주민이 퇴거하는 현상인데, 최근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좀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 서울 홍익대 주변의 연남동 등은 최근까지 개발이 비교적 더딘 조용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홍대 입구가 새로운 부도심으로 부상하면서 신촌과 홍대 일대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이러한 곳에 중국 자본이 들어와 건물을 매입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들 건물은 수리나 신축을 거쳐 재탄생하면서 주로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숙박이나 상업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글로벌시대에 맞추어 중국인 관광객 일명 ‘요우커’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북촌이나 서촌 혹은 연남동 등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울의 작은 마을에도 도심 재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외국의 자본이 밀어닥치고 있다. 서울의 서쪽에 자리잡은 그 곳은 조선시대부터 중국 사신을 맞아 들이던 모화관이 있던 자리이기도 해서 더욱 아이러니하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도 함께 길어지는 법이다. 도심의 오래된 동네들이 낡고 후락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또한 숨겨진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비단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의 현상 혹은 서울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방의 도시에도 또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