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끝났다!" 아, 무정한 세월이여!
2014년 09월 19일(금) 00:00 가가
안경환의 '법과 문화'
답답하다 못해 참담한 심경이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물경 다섯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당초 정부가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하여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던 종교집단의 수장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인도 밝히지 못한 채 시신을 땅에 묻었고 몇몇 주변 인물들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을 뿐이다.
진도 체육관과 서울 광화문 광장, 경기도 안산 분향소 주변은 아직도 초췌한 얼굴에 망연한 표정의 탈진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언론도 철수한지 오래다.
우리는 한 해에도 수십, 수백 건, 크고 작은 인명 사고를 겪게 된다. 누구 하나 귀중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만 ‘참사’로 부르는 사고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피해자 숫자 문제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참혹한 사건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있다.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처리하는 핵심적 기준은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이다. 단순히 수많은 사고의 하나로 보느냐, 아니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조리의 전형으로 보느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피해자를 단지 불운한 시민으로 보느냐, 아니면 잠재적인 피해자인 모든 국민의 전형으로 보느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 온 ‘적폐’가 원인이라고 했다. ‘관피아’, 안전불감증, 기업의 비리, 정경유착 등. 이 모든 것이 결합된, 겉치레만 번듯한 건설공화국 대한민국의 민얼굴이라는 뜻일게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는 대통령의 결의는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당초부터 허사였던 것처럼 비친다. 어느 틈엔가 적극적인 해결보다는 ‘때워 넘기는’ 식의 수동적 방어책으로 전환한 듯하니 말이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정부와 여당이 외면하는 가운데 야당과 유족이 연합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수많은 국민들은 유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올 뿐이다.
며칠 전, 이 정부의 탄생에 관련된 의혹을 다룬 판결이 내려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정치개입은 있었으나 선거개입은 없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에 대해 한 동료판사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비판의 글을 썼다. 판사가 다른 판사의 판결을 외부에 대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글은 법원의 ‘내부’ 통신망에 실린 것이다. 그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연히 구조됐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었다. 인명구조를 담당한 해경의 대응에 직무유기적인 형사책임의 요소가 있었으므로, 마땅히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언론보도가 이루어져야 했고, 또한 검찰이 선장과 선원 등을 수사함에 있어서도 해경의 구조 담당자들을 아울러 수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해 보면 당연히 진행돼야 할 이러한 과정들이 정권에 의하여 차단이 되었고, 국민들은 현 정권이 뭔가를 은폐한다는 의혹을 품은 가운데 사태가 커지는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도 민간기구에게 수사권과 공소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담길 내용과 관련하여 여·야, 유가족 3자 사이에 난항을 거듭하였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세월호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모습에 국민의 실망이 가중되자 물실호기, 최대한의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으로 보인다.
단호하게 유가족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기존의 사법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다짐했다. 실로 자신감이 넘치는 행보다.
국회는 ‘민생법안’ 처리를 명분으로 내세워 여당 단독으로 운영할 기미마저 보인다. 교육부는 일선학교에 교사들의 세월호 관련 공동수업을 금지하고 노란색 추모리본을 달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많은 국민이 ‘세월호 피로증’에 걸린 것도 사실이다. 내용이야 어쨌든 한시바삐 매듭짓고 넘어갔으면 하는 체념 비슷한 바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야 어찌 구조적 적폐를 척결할 수 있겠는가? 실로 답답하다.
하지만 어찌하랴, 무심을 넘어 비정한 세월인 것을. 그러니 성에 차지 않더라도 ‘적폐’의 작은 한 매듭이라도 풀고 가야할 것만 같다. 치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모두에게 지혜로운 인내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당초 정부가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하여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던 종교집단의 수장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인도 밝히지 못한 채 시신을 땅에 묻었고 몇몇 주변 인물들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한 해에도 수십, 수백 건, 크고 작은 인명 사고를 겪게 된다. 누구 하나 귀중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만 ‘참사’로 부르는 사고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피해자 숫자 문제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참혹한 사건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있다.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처리하는 핵심적 기준은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이다. 단순히 수많은 사고의 하나로 보느냐, 아니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조리의 전형으로 보느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피해자를 단지 불운한 시민으로 보느냐, 아니면 잠재적인 피해자인 모든 국민의 전형으로 보느냐이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는 대통령의 결의는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당초부터 허사였던 것처럼 비친다. 어느 틈엔가 적극적인 해결보다는 ‘때워 넘기는’ 식의 수동적 방어책으로 전환한 듯하니 말이다.
며칠 전, 이 정부의 탄생에 관련된 의혹을 다룬 판결이 내려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정치개입은 있었으나 선거개입은 없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에 대해 한 동료판사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라는 제목의 비판의 글을 썼다. 판사가 다른 판사의 판결을 외부에 대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글은 법원의 ‘내부’ 통신망에 실린 것이다. 그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연히 구조됐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었다. 인명구조를 담당한 해경의 대응에 직무유기적인 형사책임의 요소가 있었으므로, 마땅히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언론보도가 이루어져야 했고, 또한 검찰이 선장과 선원 등을 수사함에 있어서도 해경의 구조 담당자들을 아울러 수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해 보면 당연히 진행돼야 할 이러한 과정들이 정권에 의하여 차단이 되었고, 국민들은 현 정권이 뭔가를 은폐한다는 의혹을 품은 가운데 사태가 커지는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도 민간기구에게 수사권과 공소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담길 내용과 관련하여 여·야, 유가족 3자 사이에 난항을 거듭하였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세월호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모습에 국민의 실망이 가중되자 물실호기, 최대한의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으로 보인다.
단호하게 유가족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기존의 사법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다짐했다. 실로 자신감이 넘치는 행보다.
국회는 ‘민생법안’ 처리를 명분으로 내세워 여당 단독으로 운영할 기미마저 보인다. 교육부는 일선학교에 교사들의 세월호 관련 공동수업을 금지하고 노란색 추모리본을 달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많은 국민이 ‘세월호 피로증’에 걸린 것도 사실이다. 내용이야 어쨌든 한시바삐 매듭짓고 넘어갔으면 하는 체념 비슷한 바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야 어찌 구조적 적폐를 척결할 수 있겠는가? 실로 답답하다.
하지만 어찌하랴, 무심을 넘어 비정한 세월인 것을. 그러니 성에 차지 않더라도 ‘적폐’의 작은 한 매듭이라도 풀고 가야할 것만 같다. 치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모두에게 지혜로운 인내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