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자살률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다.

자살이 사회구조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 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다. 그는 자살을 개인적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 현상으로 봤다. 그가 주목한 것은 평화 시기와 전쟁 시기에 따라, 그리고 유대교·가톨릭·개신교에 따라 나타나는 자살률의 차이다.

뒤르켐의 주장은 사회를 유지하는 ‘통합’과 ‘규제’가 극단화될 때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통합 정도가 너무 작은 상태에선 ‘이기적’ 자살률이, 너무 큰 상태에선 ‘이타적’ 자살률이 높아지고, 규제 정도가 너무 작은 상태에선 ‘아노미적’ 자살률이, 너무 큰 상태에선 ‘숙명적’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인적 존재와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자살률은 증가하게 된다.

뒤르켐의 자살 연구로 말문을 연 것은 우리 사회 현실 때문이다. 두 가지 사실이 내 눈길을 끌었다. 첫째,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3∼12년의 10년 동안 회원국들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2012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OECD 평균(12.1명)보다 17명이나 많았다.

둘째,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2000∼2012년 사이 우리나라 자살 증가율은 109.4%로 세계 2위다. 키프로스가 1위를 차지했지만 자살률이 5명 이하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이렇게 높은 자살률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노인 자살률과 청소년 자살률이다. 2012년 60대 자살률은 42.4명, 70대는 73.1명, 80대 이상은 104.5명을 기록했다.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은 것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노인 빈곤율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가난 속에서 질병과 고독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15-24세) 자살도 그 사망 원인의 1위를 기록할 만큼 사회문제화된 지 오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살 충동에 관한 통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지난 1년 동안 한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11.2%에 달했다. 성적·진학문제, 경제적 어려움, 가정불화, 외로움·고독 등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주목할 것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후 우리 사회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60∼70년대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0명 내외 정도였다. 1975년 자살률은 지금보다 높은 31.9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삶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급속한 산업화가 가족·친족 등 전통적인 공동체로부터의 결속을 약화시킨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이 함의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가 또 한 번의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 위기는 노인과 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두드러진다.

뒤르켐 연구에 비춰보면, 아노미적 자살이든 이기적 자살이든 자살률의 증가는 사회통합의 약화와 사회해체의 위험에 비례한다.

자, 이쯤해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 삶의 질은 나아졌는가, 아니면 나빠졌는가. 초기 산업화 시대의 높은 자살률을 고도성장과 그 과실의 분배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면, 현재의 높은 자살률은 무엇으로 낮출 수 있는가.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담을 포함한 즉각적 해법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 양극화 해소와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 개편 등을 포함한 제도개혁이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자살을 방조하는 사회가 우리나라의 자화상이 아닐까. 사회통합 약화와 사회해체 경향에 노란불을 지나 빨간불이 커졌는데도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낯설어지고 두려워지는 이 사회, 더 이상 이렇게 놔둬선 안 된다.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