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올림픽경기를 준비하던 쿠베르탱 남작에게 언어학자인 ‘이셀 브레얼’ 교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이긴 아테네의 전령이 40㎞를 쉬지 않고 달려,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우리가 이겼다.’라는 승전보를 전한 후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에 감명받은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던 마라톤을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정식 경기로 채택, 승리의 소식을 알리는 영광된 전령의 계승자가 되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설이 신화가 되고 신화가 역사가 된다’지만, 이 내용은 분명 사실이 아니다. 정확한 기록으로 정평이 나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당시 전투는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간에 벌어진 결정적 전투로, 전력상 5대 1 정도로 아테네가 열세였다고 한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대적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아테네는 페이디피데스를 전령으로 파견하여, 숙적인 스파르타에 참전을 요청했다. 하지만, 스파르타 지도부는 이틀을 달려 스파르타에 도착한 페이디피데스에게 ‘만월에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전통을 내세워 출병이 늦어질 것임을 통보한다.

결국, 아테네는 페르시아와 단독으로 맞서게 되었고, 뒤늦게 스파르타군이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후였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아테네는 이후 스파르타와 양강체제를 구성하며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누리게 된다. 즉, 페이디피데스가 당시에 가장 잘 달리는 자임에는 분명했지만, 승전보가 아닌 원군을 청하기 위해 달렸던 셈이다.

어쨌든 별 소득없이 스파르타에서 돌아온 페이디피데스는 자신이 달리는 도중 목신 ‘판’을 만났는데, 그때 판이 아테네의 승전을 약속했었노라고 시민들에게 전했다. 여기에 감동한 아테네 사람들은 승리의 영광을 판과 함께 나누기 위해 횃불을 들고 달리는 경주를 시작했고, 이것이 근대 올림픽 성화 봉송의 유래가 된다.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마라톤은 그 종주국인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거의 상시로 열리는 행사인 반면,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에서는 금기시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필자도 2003년 4월의 어느 날 아테네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등록 신청을 했다. 1㎞만 달려도 숨을 헐떡이는 저질 체력이지만, 기념비적 역사성을 가진 마라톤 주자의 일원이 되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가 선택한 코스는 10㎞ 단축 코스였지만, 그것도 감히 완주를 꿈꾸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힘이란 대단한 것이어서 결국 제한시간 내에 완주하며 기념 메달까지 받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메달을 목에 걸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결승선 쪽에 엄청난 환호가 들려왔다.

풀코스 1위 주자가 결승선에 들어서는 함성이라고 생각한 필자가 결승선으로 다시 걸음을 돌렸더니, 환호의 대상자는 뜻밖에도 언어장애와 시각장애 그리고 뇌성마비까지 가진 복합 장애인이었다. 역시 단축 코스에 도전했던 그는 힘겹게 결승선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접근해왔고,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은 그에게 ‘브라보’를 외치며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또 그의 주변에는 자신의 경기 대신 그의 뒤를 따르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옆에서 박수를 쳐주고, 누군가는 그의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으며, 또 많은 사람이 뒤를 따르며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실로 장관이었다.

때마침 풀코스를 뛴 우승 주자가 들어오고 있었지만, 연도의 시민들은 온통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심지어 풀코스 우승자도 그에게 ‘브라보’를 외치며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가 결승선에 이르자, 시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일일이 그를 포옹하며 따뜻하게 맞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들은 우승자의 영광보다 장애를 디디고 일어선 그의 도전을 훨씬 귀하게 여겼으며, 그에게 진정한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준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많은 사람이 같이 울고 있었다. 2003년의 어느 봄 날, 민주주의 후예들의 마라톤 잔치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지식나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