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아홉 돌을 맞는 광복절이다. 오늘 광복절은 의미가 남다르다. 내년 2015년 8월 15일까지는 광복 70주년으로 가는 1년이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은 10년 단위로 치러지는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가 놓인 자리에 있다.

해방, 정부 수립, 분단, 한국전쟁, 박정희 정권부터 본격화된 산업화시대,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열린 민주화시대가 지난 70년의 역사였다. 1876년 개항에서 1945년까지가 나라를 상실해갔던 시간이라면, 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는 나라를 새롭게 세워온 시간이었다.

역사는 반복 속에 전진하는 나선형을 이룬다. 이 나선형의 역사에는 분기점들이 존재한다.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흔히 전후(戰後, post-war) 시대라 부른다. 여기서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1944년은 전후 시대로 가는 길에 놓인 해였다.

서유럽에선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반격이 강화됐고, 아시아에선 일본에 대한 미국의 공세가 본격화됐다. 1943년 카이로회담과 테헤란회담에 이어 이 해에는 국제연합(UN) 창설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한편 1944년 국내에선 일본 패망과 조국 광복을 대비하기 위해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동맹이 창립됐고, 해외에선 김구가 주도한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1945년 전후 체제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으로 나아가던 해가 바로 1944년이었다.

전후 시대에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가 보여온 풍경은 사뭇 다르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의 전후 시대를 이끈 동력은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였다. 이른바 ‘영광의 30년’과 ‘고뇌의 30년’이 이어졌다. 그리고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G2 시대’가 열리고 있다.

비서구사회의 전후 시대를 견인한 힘은 발전주의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경제성장의 도전과 실험이 진행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공업국(NICs)이 등장했고, 21세기를 장기적으로 주도할 브릭스(BRICs)의 영향력이 커져 왔다.

하지만 전지구적으로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의 불평등이 외려 증가했고, 인구·식량·에너지·기후문제 등 새로운 도전에 대면하게 됐다.

광복 70주년으로 가는 2014년 한국사회의 현재는 이런 세계사적 흐름이 강제하는 구조적 조건 아래 놓여 있다. 비서구사회에서 출발해 추격 산업화와 추격 민주화를 통해 서구적 선진사회에 근접했다고 자부해 왔지만, 민주화 시대의 황혼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할 지 서성이고 망설이고 있다.

더없는 슬픔과 분노를 안겨준 세월호 참사는 근대화의 어두운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일깨워줬다.

선진화·경제민주화·복지국가 등 담론들이 무성하게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양극화·비정규직노동자·고령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를 해결할 국가능력과 정치역량에 대해 국민 다수는 회의하고, 그 결과 집합적 무기력이 우리 사회를 감돌고 있다.

역사에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분기점이 존재한다. 다른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트는 지점이 분기점이다. 그 지점을 지난 이후 일련의 집합행위가 누적되면서 사회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역사적 분기점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돌아보면 진보의 복지국가 시대와 보수의 신자유주의 시대로 이어진 전후 시대가 마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70년에 가까운 지난 시간은 나라 세우기 시대였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구체화된 나라 세우기에 담긴 빛과 그늘이 뚜렷해진 현재, 그 명암을 제대로 바라볼 때가 됐다. 지나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좀 더 냉정한 시각에서 평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생각과 상상력을 구속해온 이념과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미래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내년 광복절까지 광복 70주년으로 가는 1년을 떠올리며 품어보는 희망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