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반가운 일이다. 산업화·민주화와 함께 통일이 우리 사회 시대정신을 이뤄왔음을 생각할 때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통일로 가는 길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한다.

통일이 중요한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같은 민족이 한 나라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으로, 분단으로 인해 치르는 비용이 너무 크다. 경제적으로, 북한은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70년에 가까운 남과 북의 이질화 과정을 돌아볼 때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도 빨리 통일을 이뤄야 한다.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가 놓인 동북아시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의 시작은 탈냉전과 G2 시대의 도래다. 세계사는 이제 미국과 중국이 세계 사회 헤게모니를 두고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아프리카 대륙 자원을 두고 두 대국이 벌이는 경쟁은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최대의 지역은 바로 동북아다. 이 지역은 중국이 놓인 동시에 미국의 최대 우방국인 일본과 한국이 놓인 지역이라는 점에서 그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G2 시대라는 세계사의 새로운 국면은 동북아에서 형성돼 온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대중 무역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져온 반면 정치·군사적으로는 한미동맹이 여전히 결정적이다. 한미동맹의 틀을 지속시켜 갈 것인가, 새로운 균형외교로 나가야 할 것인가의 선택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G2 시대가 전쟁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두 대국 간 ‘공존 속의 경쟁’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과 인구 13억이 넘는 방대한 내수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중국 간의 경쟁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게 분명하다.

동북아의 변동은 남북한 통일에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고,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동북아의 세력관계는 통일로 가는 길에 구조적 강제를 이루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구조적 강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국에 이익에 되는 한반도 통일이라면 거부할 리 없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이 없듯 통일로 가기 위해선 다각적인 통일 외교를 펼쳐야 한다. 한반도를 분단으로 놓아두는 것보다 통일된 대한민국이 이웃 나라들의 국익에 도움이 되고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관계의 개선 또한 중요하다. 대외관계는 어디까지나 외적 조건일 뿐이며, 통일의 주체는 우리나라와 북한일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그 방식이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드레스덴 구상’을 흡수통일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분명한 것은 통일로 가기 위해선 남과 북이 평화공존을 이뤄야 하고 그 방식이 평화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 해결, 군사적 긴장 완화, 경제협력 강화, 사회·문화적 이질성 해소 등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충실한 것만이 통일로 가는 길을 앞당길 것이다.

통일준비위에 바라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일각에선 통일준비위가 집행력을 갖기 어려운 조직적 한계를 지적한다. 통일준비위는 청와대가 밝혔듯이 통일 준비를 위한 민관협의 및 연구라는 본래의 목적에 주력해야 한다.

통일은 정권적 과제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다. 말하자면, 정권의 이해 득실을 떠나 민족의 미래라는 시각에서 평화를 수단과 목적으로 동시에 삼는, 국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통일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일궈내는 데 통일준비위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제관계는 일종의 체스판이다. 이 체스판은 끝없는 이합집산과 합종연행 속에 그 미래를 열어두고 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과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체스판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증거한다. 격변하는 동북아 구도 속에서 새로운 통일의 길을 적극 모색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