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있는 ‘모나스트라키 광장’에는 ‘추락하는 이카루스’ 라는 거대한 동상이 조성되어 있다. 국립 아테네대학에 ‘동상학 전공’이 따로 있을 만큼 동상이 많은 그리스지만, 이것은 그리스 전체의 동상을 통틀어 가장 압도적이자 인상적인 동상이다.

우선 규모부터가 그렇다. 우리로 치면 서울 명동 네거리 정도의 중심지에 주변 건물 높이만한 동상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부조화를 넘어 기이함을 느낄 정도다. 물론 이 동상에 압도당하는 이유가 단지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불상처럼 번쩍이는 금박을 입힌 광화문 세종대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체의 장식미를 배제한 검은색 몸체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심야에 모차르트를 찾아가는 ‘살리에리’의 실루엣처럼 자못 비장하고 음습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점만으로 이 동상의 의외성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백미는 단연 내려꽂히는 하강감이다. 날개가 녹아버린 이카루스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순간, 아니 지면에 충돌하는 순간을 정지영상으로 포착한 듯한 형상은, “아” 하는 외마디 탄성이 나올 만큼 아찔하고 강렬하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던 이카루스의 행복한 비상이 순식간에 땅으로 내리꽂히는 추락으로의 반전과, 그에 따른 경악과 전율, 공포가 솜털이 일어설 만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추락하는 이카루스’를 유럽 전역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동상으로 꼽는 이유는 비단 이런 조형적 이유만이 아니다. 대저 한 나라의 중심가에 조성되는 동상은 그 나라의 위인이나 대표적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가끔 실존 인물이 아닌 전설이나, 설화 혹은 문학작품의 주인공을 대상으로 삼더라도, 네덜란드의 인어공주, 춘천의 소양강 처녀처럼 연민과 추억을 가진 소재를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신화의 주인공을 하나쯤 동상으로 건립한다면 그 대상은 아름다운 헬레나나, 잘생긴 패리스 왕자, 혹은 신중의 신 제우스 정도가 마땅할 터, 이카루스처럼 비극적 인물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섬뜩하고 불편한 선택일 것이다.

한데 그리스인들은 놀랍게도 ‘이카루스’, 그것도 비상이 아닌, ‘추락하는 이카루스’를 동상으로 만들어 수도 아테네의 중심가도에 세웠다. 이유는 짐작하는 대로다.

그들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 상인방(上引枋)에 새겨진 유명한 두 문구, “너 자신을 알라”와 “과도하지 않게”라는 조상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이카루스를 선택했다. 지극히 그리스인 다운 선택이다.

그들의 조상은 ‘과도하지 않게’, 즉 과유불급을 자손 대대로 내리는 교훈으로 삼아왔고,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주제로 산파술이라는 문답술을 창안해, “제발 주제 파악 좀 하고 살자”는 철학의 주제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이런 이성적 가치를 우선한다. 작자 미상인 ‘전갈의 우화’에서 개구리의 등에 타고 강을 건너던 전갈이 독침으로 개구리를 찌르고 싶은 본능을 참지 못해, 결국 독침을 세워 개구리를 찌른 후 자신도 물에 빠져 죽어가며 남긴 말, “그것이 나의 본성이야” 라는 외마디처럼, 인간은 이성보다 본성의 유혹에 자주 압도당하고 만다.

그리스인들도 그랬다. 넘치지 않는 겸손을 국가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이카루스’를 동상으로 만들어 세우기까지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동상을 세운 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고, 연이어 투기버블이 그리스 전역을 휩쓸었다.

그 다음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조상의 교훈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고, 이카루스의 추락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비단 그리스만의 문제일까. 십 수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위기를 꼭 같이 겪고 있는 그리스인들을 두고 ‘게으른 자들’이라 손가락질하는 우리에게, 모나스트라키의 이카루스는 ’메덴 아간! (과도하지 않게!)‘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지 않을까?

<지식나눔네트워크 대표>